그 날의 기억과 기록, 그리고 이미지
"일 더하기 일은 이 / 일 더하기 일은 십일. / 일 더하기 삼천은 삼천일. // 아홉 번째 달의 열한 번째 날은 비상사태. / 911 긴급구조 신호 속의." -앤 라우더박(Ann Lauterbach)
2001년 9월 11일. 두 대의 비행기가 각각 두 채의 빌딩을 격추시켰다. 피어오르는 화염과 짙은 연기를 목도한 이들 모두 "실제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영화 같던, 아니 영화여야만 했던 장면을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허무맹랑한 SF영화마저 "실감난다"는 표현을 즐겨 쓰는 이들이다. 영화에 몰입하기 쉽도록 불신을 유예하는 덴 선수다. 그들이 정작 현실 속의 사건을 대하며 본인의 눈으로 직접 보고 있는 것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적부터 굳건히 지켜져 온 진리, '보는 것=믿는 것'이라는 간단한 공식에 의문을 제기하던 순간이었다. 카라밧지오의 명작 <의심하는 성 토마>에서 토마가 재림한 예수를 눈앞에 두고도 믿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촬영기기의 보급과 인터넷 매체 덕에 역사상 가장 많은 시각 기록물이 남겨지고 보급된 재앙, 나인 일레븐(9/11). 그 극적인 이미지는 이제 전 세계 사람들에게 아이콘으로 각인됐다. 맨해튼 스카이라인의 상징이던 쌍둥이 빌딩은 이제 없지만, 그 부재는 과거가 된 존재를 오히려 선명히 되새김질 시켜 준다. 사라진 존재의 기억 안에서의 영속. 이것이 미술에 남겨준 바는 무엇일까. 그 시각적 강렬함에도 불구하고 이 이미지를 주제 삼는 작가나 전시가 드물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하여 모마 PS1이 도전장을 내민다. 10주년을 맞는 '그 날'에 맞춰 "셉템버 11(September 11)"전을 준비한 것이다. 지난 7월, PS1의 학예연구실장으로 새로 부임한 피터 일리(Peter Eleey)의 야심찬 기획이다. "비록 타워들은 사라졌지만, 우리는 그들의 문학적이고 형상적인 반향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알렉스 카츠의 나란한 두 그루의 나무 실루엣에서든, 그 공격에 대한 반응으로 변화된 우리 문화의 다양한 방식들에서든. 9/11 이후에 도시 전체에 퍼진 길거리의 성지들과 자발적인 기념비들은 그 추모의 힘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나는 이 전시가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우리 삶에 계속 존재하는 그 사건을 반영하는 또 다른 방법을 제공하길 바란다."
9/11의 직접적인 이미지를 피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각인된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연상토록 돕는 70점의 작품들을 41명의 작가들로부터 그러모았다. 대부분 9/11 이전에 제작됐지만, 모두 무리 없이 9/11과 연관돼 해석되거나 이해된다. 미술작품은 시대적 배경과 전시의 맥락, 관객의 해석에 따라, 작가의 제작 의도와 상관없이 읽힌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이다.
자넷 카드리프(Janet Cardliff)의 음향설치 <40개의 부분적인 모테트>(2001)는 16세기 합창곡을 노래한다. 개별적으로 녹음된 40명의 합창단 구성원들의 목소리가 큰 원을 그리는 40개의 스피커를 통해 관객에게 들려진다. 이 설치는 9/11 공격이 있던 후의 몇 주 동안, 같은 갤러리에서 처음 선보인 것이었다. 당시, 국가적 재난과 개인적 상실에 대한 감정에 기대 관객에게 호소력 짙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같은 장소에 작품이 재설치 됐을 때, 관객들이 스스로 어떤 변화를 감지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밤의 뉴욕 교차로에서 바람에 불리는 신문지 한 장을 찍은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의 사진작품도 있다. 1950년대에 찍혔음에도 불구하고, 속보들과 실종된 사람을 찾는 전단으로 넘쳐나던 9/11 이후의 뉴욕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셉텝버 11"에선 기념비와 추모제에 관한 이미지들이 다수 눈에 띈다. 수잔 힐러(Susan Hiller)의 설치 <모뉴먼트>(1980-81)는 다른 사람들을 구하려다가 목숨을 잃은 평범한 시민의 영웅성을 기념하는 런던 공원의 빅토리안 기념비 사진들로 구성돼 있다. 하런 파록키(Harun Farocky)의 영상 <전송>(2007)은 비교적 최근에 제작된 작품으로 행운, 치료, 또는 기억을 위해서 관광객들이 만져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성지들을 찍어나갔다.
안타까운 기억을 자꾸만 환기시켜 전시 관람이 내내 불편하겠지만, 한번은 견뎌내야만 하는 과정일지 모른다. 사진평론가 데이빗 리바이 스트라우스(David Levi Stauss)는 <니콘과 아이콘>이라는 칼럼에 썼다: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우리는 행동을 하기 전에 먼저 타인의 고통을 느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타인의 고통을 알아채는 방법 중 하나는 이미지를 보는 것이다. 이미지와의 감정적인 결합은 불안정하고, 조종당할 수도 있지만, 이것이 불공평하게 비난받아도 된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사진매체를 통해 타인의 고통을 유미화하는 것을 죄악시하는 풍토를 꼬집는 문장이었다. 그는 "음악, 문학, 회화에서 고통을 미화시키는 덴 반발이 없으면서, 왜 유독 사진에만 민감한가"라고 질문한다. '수단의 굶주린 소녀가 죽기를 기다리는 독수리'를 찍은 케빈 카터(Kevin Carter)의 예가 암시하는 게 있을 듯하다. 그는 퓰리처상은 수상했지만, 셔터를 누르기 전에 소녀를 구했어야 옳았다는 비난을 못 견디고 자살했다.
화염에 싸인 건물에서 떨어지는 사람을 찍고, 온라인상에서 그 이미지를 공유하는 행위. 그것이 인간 본성에 깊게 내재한 사악함인지, 인류애에 기인한 투철한 보도 정신인지 확인할 바는 없다. 다만, 그 천문학적인 조회 수에 바래본다. 수많은 감상자들이 떨어지는 한 사람에게 애달픈 연민이나 값싼 동정, 혹은 영화를 보는 듯한 스릴을 느끼는 대신, 이심전심의 통감을 해보았기를 말이다. 9/11을 체험했던 한 뉴요커에 따르면, 9/11은 차가운 도시인들에게 휴머니즘을 되찾아준 계기였다고 한다. 병원 앞에 헌혈하고자 길게 늘어섰던 행렬, 시체 썩는 냄새와 열기를 견디며 자원봉사에 나섰던 수많은 사람들을 아직도 감동적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리고, 전시장 곳곳에 심어놓은 단서들엔 당시의 분위기를 재현해주듯, 애도의 기운이 넘쳐난다. 동료/동족의 죽음을 슬퍼하는 진지하고 진정한 감정이다. 그나저나 인간이 인간성을 확인하기 위해선 점점 더 강도 높은 충격이 주어져야 하는 걸까. 아주 잠깐 명명했다던 휴머니즘은 이 도시에선 다시 자취를 감췄다.
-퍼블릭 아트 10월호 기고 (교정교열본은 여기. http://www.artinpost.co.kr/bbs/view.php?id=world&page=2&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15)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