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날레보다 스프리츠가 좋은 서너 가지 이유
베니스만큼 이국적인 곳도 드물다. 베니스 본섬에 들어서자마자 이동수단은 오로지 배와 곤돌라, 튼튼한 두 다리 뿐이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이 섬도시에선허용되지 않는 문물이다. 바퀴와 모터달린 것들이 바삐 다니지 않는 길엔 오로지 사람, 물(술을 포함해서), 예술뿐. 베니스는 그렇게 비엔날레에 알맞고 예술가에게 적합한 도시로 탄생해, 곧 물에 잠긴다는 유언비어를 이겨내며 지금껏 건재하다. 비엔날레의존재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면서도, 베니스비엔날레만큼은 궁금증을 찾지 못해 번거로운 여행일정을 짜고만다. 미술계 계륵이 따로없다. 안 보자니 찝찝하고, 보자니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 막상 비엔날레에 도착하고 나면내후년 비엔날레에 오고싶다는 생각보다는,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 잔치에 기어코안 오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결국 2년에 한 번, 난 다시 한 번 베니스 하늘 아래 소환되고 만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안보고 못배기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120년의넘는 기간 동안 전세계의 유명작가들을 한 도시에 꾸준히 불러모으며 올해 57회를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혼자만의 힘은 아닐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마시는 싸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건더기가 많은 봉골레, 새까만 오징어먹물 파스타, 다양한 해산물이 그득한 전채요리,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시원한 프레스코, 그리고 달콤하고 예쁜색의 식전주인 스프리츠를 거의 동시에 떠올리긴 하지만,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곰곰히 생각하노라면 역시베니스 방문의 최대 명분은 비엔날레다. 결국 이 기간에 쏟아지는 빅뉴스에 궁금증을 떨칠수가 없는거다.
어트랙션이 하나둘이겠냐마는, 당연하게도 첫번째로 찾아봐야 할 것은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퐁피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이 총감독을 맡아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전시장 두 곳에서 펼쳐진 본전시‘비바 아르테 비바’말이다.마셀의 감식안을 통과한, 예술만이 가진 독특한 오라를 탐구하는 51개국의 120명 작가들이 모였다.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예술의 원류가 되는 작가의 영감이나아이디어에 생각은 가 닿기 마련이다. 그 철저한 파헤침을 증명하려는 듯, 참여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도서목록이 자르디니의 방 한칸을 차지한다. 프로젝트명은 <내 도서관 공개하기(Unpacking My Library)>.1931년에 발행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들의 책을 전시도 하고, 비엔날레 도서관에 영구 기증하기까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본전시에는 의도한 바겠지만 책이나 텍스트를 소재를 삼은 작품들이 많다. 존 라담(John Latham)과 겅 지안위(Geng Jianyi)처럼 책을직접 오브제로 사용하며 조형물을 만들거나 캔버스에 붙이는 작품들이 있었다. 리우 예(Liu Ye)는 거꾸로 단정히 놓인 몬드리안이나 릴케의 책을 나무패널에 아크릴로 그린 시리즈 <책회화>를 소개했다. 시프리안무레산(Ciprian Muresan)은 책을 잘라 쓰레기통에 담은 설치와 책에서 본 이미지들을 다시종이에 연필로 그려 벽지처럼 붙이는 작업을 보여줬다. 작고작가며 이미지만으로 친숙한 유명 작가들이 포진한와중에 주목할만한 젊은 작가들을 꼽는다면, 회화성에 천착하는 84년생홍콩작가 피렌제 라이(Firenze Lai)일 것이다. 실내에앉아 있거나 창문틀에 기댄 평범한 포즈와 풍경이 과감한 붓터치, 유기적인 선과 멜랑콜리한 색의 조화에기묘한 비례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회화의 힘이 무엇인지, 그원류를 생각해보게 하는 젊은 작가의 과감한 페인팅임은 분명하다. 로즈 레이첼(Rose Rachel)에게도 시선을 둘 가치는 있다. 1986년 미국에서태어난 비디오 설치 작가로 역시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 28세에 이미 미국미술계의 총아로 주목받으며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천재작가. 그리고, 하오 리앙(Hao Liang). 실크 위에 먹과 과슈로 작업하는 작가는, 중국의전통화 기법을 유지하면서, 동시대의 감각을 드러내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마음과 손, 눈이 서로 통합하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기술을 익히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명불허전을 꼽으라면 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녹색조명-예술적인 워크샵>을 진행한 올라퍼 엘리아슨이다. 아름답고 스케일이 큰 특유의 연출을 보여줄까 하는 모두의 기대를 깨고, 정치적인이슈를 예술에 끌어와 난민이 참여하는 워크샵 형식의 공간을 꾸몄다. 비엔날레와 예술이 벌어지는 한 켠에서전쟁이 일어나고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도록 독려하는 이 작품은, 예술로 둘러싸인 거대한 전시장에서예술의 모습을 하지 않은 워크샵의 모습으로 다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게 했다. 신선한 환기와자극을 주는 거장의 작품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거니와, 워크샵으로 만들어지는 녹색 조명은 여전히아름다웠다. 엘리아슨은 “난민이 겪는 고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밀수, 인신매매, 마피아 조직의 실상-까지” 다뤘다고밝혔다.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될 수 있고, 다시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내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지만 미술을 매개로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관심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게 그가 난민을 주제로 삼은 이유다.
자르디니엔 김성환의 설치와 영상작품 <러브 비포 본드(Lovebefore Bond)>가 전시됐다. 작가의 여조카와 수단출신의 아프리칸 소년을 주인공으로내세운 감각적인 영상작업은 영상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구조물이 다시 공간에 설치되는 방식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사춘기의불안정함, 미국사회 속 인종 문제 등의 주제의식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중에 작가가 중시하는 음향과 영상을상영하는 공간의 의자 등의 세팅까지 정교하게 연출된 공간에서 관객들은 쉽게 영상에 몰입하는 눈치였다. 또다른 본전시 출품 한국작가는 이수경으로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나라의 아홉 용>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간 계속 소개해온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에서도 눈에 띄게 규모가 커진 5m짜리 대형작품을 제작했다. 상대적으로 큰 공간을 가진 아르세날레에 소개된 이 작품 외에도, 비엔날레기간에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라는 퍼포먼스를선보이기도 했다.
어트랙션 두번째는 역시 뻔하게도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들이겠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엔 87개 국가가 참가했다.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 내에 위치한 30개의 상설 국가관과 베니스시내 곳곳에서 마련되는 비상설 국가관 전시를 아우른다. 자르디니의 국가관 투어를 시작할 때 가장 초입에서만나게 되는 스위스관은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다. 스위스 출신의 자코메티는 늘 모델을 세울 정도로 가깝던형제인 브루노 자코메티가 직접 건축한 연이 있는 스위스관에 국가대표로 참여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노력 덕에 비슷한 기간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을 가지고 있던 자코메티의 국적이 영국인지 프랑스인지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실존주의를 탐구하던 자코메티라는 작가의 작업세계에 집중할 따름이다. 스위스관은비록 자코메티를 내세울수는 없었지만, 자코메티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스위스 출신 작가들을 소환하는 데는성공했다. 스위스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캐롤 보브(CarolBove)와 알렉산더 버칠러와 테레사 허바드(Alexander Birchler& TeresaHubbard)는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와 접속하면서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낸 작품을 소개했다. 유약해보이는파란색 원통형의 수직 조형물은 자코메티의 가녀린 실존적 조각상에 대한 보브의 응답이다. 버칠러와 허바드는자코메티의 연인이었던 플로라 마요(Flora Mayo)를 소개하는 가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무명의 작가였던 플로라가 자코메티와 같은 시기였던 1920년대에파리에서 공부한 과정을 리서치해 제작한 이 영화는 스크린의 앞뒷면에서 동시상영됐다. 한쪽은 플로라의알려지지 않은 아들의 2016년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처한 상황, 한쪽은플로라가 1929년 파리에서 겪는 상황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비슷한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공부한 자코메티는 거장이 되고, 여성작가는 무명으로 남겨지는 상황을 시대와 공간, 게다가 세대를 뛰어넘는 독특한 연출로 암시한 것이다. 언제나 국가관의이야기들은, 국가관의 정체성을 약간 비꼬거나 탈피했을 때 매력적이다.
이에 반해 한국관 전시는 한국성, 혹은 아시아성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코디 최와 이완이 참여한 한국관의 주제는 균형을 맞춰주는 저울추를 뜻하는<카운터밸런스>. 미스터케이라는 제3의인물을 내세워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전시장 외관은 카지노처럼 현란하게 꾸며 시선을 끌었는데, 독일관을 감상하기 위해 줄을 선인파의 시선이 닿는 쪽이 하필 한국관이었다. 외관에 작품으로 포장한 것이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게되는데는 독일관의 흥행에 빚을 진 셈이다. 비엔날레 기간 내내 화제였던 독일관은 안네 임호프(Anne Imhof )의 <파우스트(Faust)>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트라잘 해럴(Trajal Harrell)의 안무작품을 모은 퍼포먼스 회고전인 <후치쿠치>를 런던의 바비칸센터에서 관람하고, 임호프의 <파우스트>를 본 뒤에,뮌스터에선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의 <새는 영토(Leaking Territories)>를 마주한나로선, 과연 2017년 현대미술의 왕좌는 퍼포먼스에 내어줘야겠구나라고말할 수밖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는 건 세계 공통의언어와도 같아서, 임호프의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어보였다.
벨기에관의 더크 브랙만(Dirk Braeckman)은 축제같은 비엔날레의 중심에서 묵직하게 중심을잡아주는 노릇을 했다. 말끔한 화이트큐브에 흑백 사진 20여점이전시의 전부다. 현대미술의 왕좌 자리를 겨루는 미국관과 영국관이 과거의 명성에 비해 맥을 못 춘 느낌은있다. 미국관은 <내일은 또 다른 날>이라는 제목으로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불구로 태어나올림푸스 산에서 추방된 예술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상징하는 작품을 대표적으로 소개했는데, 어둡고 크고거친 느낌이 강하다. 영국관에서도 폐품 같은 거대한 설치 조각을 볼 수 있다. 필리다 발로우(Phyllida Barlow)는 석고, 합판, 시멘트처럼 강하고 거친 건축 재료와 합성수지, 섬유같은 부드러운 재료를 함께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의 공간 설치 작품을 창조한다.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장대한 상상력을 펼쳐내는 작가는 이번에 “영국의 브렉시트가 주는 우울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의 리사 레이하나(Lisa Reihana)는 파노라마형식의 비디오설치로 거대한 전시장한 벽을 가득 채웠다. 필름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형식의 파노라마에서는 하와이, 타히티, 퉁가, 호주, 뉴질랜드를 등 다양한 지역의 전통음악과 의식 등을 표현해낸다. 오스트리아의에르윈 웜(Erwin Wurm)은 오렌지 같은 엉뚱하고 불안정한 오브제에 지탱하는 퍼포머로 1분 조각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시도한 작가다. 이번에는 트럭을 수직으로거꾸로 세워 관객이 직접 작업으로 들어가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고, 전시장안의 관객참여를 유도하는 위트넘치는 작업들도 매력적이었다. 타이완에는 왕이 귀환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라니. 젖은 종이를 넓은 공간 바닥에 나열해 깔아가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 설치가 신작. 나머지는 모두 과거의 작품들이다. 왕의 내놓은 성과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시에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신선했을지도 모르겠지만,비엔날레 고어들은 대부분 전세계에서 모인 현대미술의 전문가들일텐데, 별다른 고민없이 구작을소개하는 것에 그친 전시에 대해 긍정적인 커멘트를 달기는 어렵다. 이와사키 타카히로(Takahiro Iwasaki)는 금각사 등의 신사를 모델삼아 그 건축물이 수면에 반사되는 모습을 나무 모형으로정교하게 재현한 <리플렉스모델>로 일본관에 참여했다. 칫솔이나 수건 등, 주변의 사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는 <아웃오브디스오더>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이와사키의 직조물에서 뽑은 런던 아이나 탑의 미니어쳐 건축구조물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칫솔 위에 세워진 송전탑의 정교함에선 눈을 뗄 수 없다. 관객이전시장 바닥에 머리를 넣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위트있는 연출은 일본관에 긴 줄을 형성시킨 일등공신.
올해 베니스의 세번째 어트랙션은 피노와 허스트의 만남이었다. 프랑수와 피노 PPR그룹 회장의 공간인 '푼타델라도가나'와 '팔라초그라시'에서열리는 전시는 매번 비엔날레마다, 본전시 다음으로 찾는 중요코스이지만,올해는 유난했다.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Treasures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란 제목을 달고, 데미안허스트(Damian Hirst)가 베니스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전시예산만750억원. 50억원대 예산이 투입된 비엔날레의 15배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는 전시는, 어쩌면, 비엔날레보다 더 큰 어트랙션이었을거다. 허스트는 ‘시프 아모탄 2세’라는 2세기에살았다는 인물을 설정하고, 보물을 싣고 인도양에 가라앉은 배 ‘아피스토스’도창조해냈다. 이 난파선이 지난 2008년 발굴됐다는 핍진성있는시나리오의 증거물을 전시장에 나열한다. 시나리오를 탄탄히 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에는 3가지 에디션이 있다. 허스트는 전시장에 산호 에디션과 복원판, 복제본을 나란히 전시하고 ‘발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풍 영화와사진기록물을 함께 전시했다. 높이 18m가 넘는 <그릇을 들고 있는 악마(Demon with Bowl)>는팔라초그라시 중앙공간을 가득채웠다. 완전히 청동 조각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레진에 색을 칠한 것이라고. 진짜와 가짜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데 돈을 엄청 쓴 이 전시는 블럭버스터 영화 한 편을감상하고 나온 느낌과 비슷하다. 영화값이 아깝진 않지만, 두번 보고 싶다거나, 여운이 길다는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 같이이번 비엔날레에도 참여한 제이슨 테일러(Jason deCaires Taylor)의 수중 설치 조각품과 결과물이 유사한 점은 또다른 비엔날레의관람 포인트였다.
아마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 수행하듯 전시를 찾아보는 대부분의 비엔날레고어들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다람쥐 쳇바퀴같은 순례를 왜 평생에 한 번이 아니라 2년에 한번씩 해야하는건가. 비엔날레의 한국관에 코디최는 <소화불량에걸린 우주>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비엔날레란 언제나소화불량에 걸린 현대미술같은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던져주는 질문들과 흥미로움은 다시또 기꺼이 소화불량을 감당하게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예술은 인간성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예술만세를 외쳤다. 정말,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해맑게도“만세, 예술 만세”였으니까. 브렉시트가 터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마당이다. 유럽 이곳저곳에선 테러가 일어나고, 북핵문제로 3차대전을 염려하는 이 시국에, 정말 어쩌면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유지할 수 있는 게 예술일까? <뉴욕타임즈>의홀랜드 카터는 지난번, 혹은 6년 전에야 이 전시가 유효했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너무나 안 좋다며, 예술 만세를 외치는 게 전혀 와닿지않는다는 투로 총 기획을 노골적으로 부정적이게 비판했다. 카터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예술만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어둡고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지면에서, 한줄기 밝은 빛은 언제나 예술섹션의 몫이라 믿어본다. 전시만큼 처절하고 척박한 현실을 버티며 일구는 예술 만세, 예술가만세랄까. 글을 마치는 마당에 한번 더 마셀의 문장을 생생하게 옮겨보자. “휴머니즘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갈등과 심한 변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것들 중 가장가치있는 부분이다.”
-퍼블릭아트 10월호
글쓴이 이나연은 삶의 절반은 미술평론을 읽거나 쓰는 일에, 나머지 절반은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응원하는 일에 쓰며 산다. 제주에 집이 있고, 서울과 런던, 뉴욕 등에서 일을 한다. 삶의 대부분을 내 집이 아닌 곳이거나 길위에서 보내는데, 언제나 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 제주에서글로벌 문화신문 <씨위드>를 발행했고, <뉴욕지금미술>, <뉴욕생활예술기>라는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최근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