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1월 14일
아이구 몸살
날도 몹시 춥고 해서 두정거장 거리를 택시를 잡아탔는데, 퇴근길이라 그런지 강남일대는 택시, 외제차. 국산차가 적절한 비례로 뒤섞여서 꽉꽉...
학동 사거리에 말 그대로 '주차'된 택시안에서 사진기자 k와 함께 수다를 떨다가.
"쿵!"

3박 4일간 입원하고 집에 몸져 누웠다.
# by | 2010/01/14 23:49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0)
글을 쓴지가 너무 오래다.
잠 안오는 새벽엔 글쓰는 게 자연스러웠던 시간이 분명히 존재했었는데,,
그간 산적한 공부거리들에 치여 "글쓰는 본능"을 잊고 산지 정말 오래다.
이런저런 급한 불을 대강 꺼둔 지금. 불안불안한 소강의 상태에, 문득, 다시.
잡글이라도 써야되는 건 아닌가. 하는 각성이 들더라.
연말이 불어넣는 한해정리의 압박인지 몰라도.
제주도집 화장실에 놓여있던 박완서의 <친절한 복희씨>를 다시 읽으면서, 그녀의 수다스러움에 나도 동조하고 싶어진 것일지도 모르고.
어떤 연유인지, 제주도집에만 오면 박완서 책만 읽게 된다. 박완서의 글 속엔 엄마같은 따뜻함이 조곤조곤 배어 있기 때문인가.
나의 28살은 토플-지알이-토플-영어과외다.
지독한 스트레스를 달디단 카라멜 마키야토로 달래느라, 몸무게가 3kg이 늘었고,
그 몸무게를 다시 줄인답시고, 핫요가를 시작했으며,
지알이 시험을 보러 미국에서 3개월간 체류했다.
데스크탑보단 노트북이 편해졌고,
혼자서 먹을 한끼 식사로 샤브샤브를 만들어먹는 정신적, 노동적 사치도 반항삼아 해보았고,
남들이 보기엔 딱히 생산적으로 보일리 없는 것들과 싸우면서 내 청춘의 1년을 소비하는 와중에,
그래도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되는 건, 남자친구와의 제주도여행이다.
끝내주게 행복하진 않았어도, 불합리한 상사를 지켜봐야 한다거나, 철 없고 멍청한 상사의 과대망상의 제물이 되어야 한다거나 하는 견디기 힘든 불운따윈 없었으니 평안한 한 해를 보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니 어쩌면, 내 생애 가장 알차고 복된 1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롯하게 내가 해야할 것들만 조목조목 챙기면서 보냈으니까.
그러니까,
나연!
새해에도 복 많이 많이 받아!
# by | 2009/12/28 01:52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2)
오랜만에 홍대마실을 나왔다.
과친구들과 저녁약속이 있다.
과외를 끝내고 바로 왔더니, 두시간이 빈다.
비도 오고, 뉴욕에서 사온 헌터 장화도 신었으므로,
오랜만에 번잡한 거리를 배회해 보다가.
이내 싫증이 나서, 스타벅스에 자리를 잡았다.
정기자님이 보내주신 카페라떼 기프티콘이 있었거든.
이런저런 서류들을 정리해 보려고, 노트북도 가지고 나온 것인데.
으악. 여기는 정말이지 소란스럽다!
비싸도 카페골목인가. 라는 생각을 해보다가,
'그래도 홍차 한잔에 7,000원은 너무해.'
라고 결론짓는다.
# by | 2009/10/31 16:25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10/31 02:14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0)
그렇게 고향에 남아서,
남들 취직할때 취직하고,
결혼하기 좋을 때 결혼하고,
적당한 시기에 임신까지 해서,
재미있는 것 같다.
라는 말하는 너에게 난 오늘 많이 질투가 났어.
작고 평안한 일상에 재미와 행복을 찾는 너의 성품이 부러웠던 것이지.
그리고 곧 명백한 감정이 차올랐는데,
그건 니가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서, 내가 더 행복하다는 것.
니가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넌 짐작조차 못할꺼야.
# by | 2009/10/28 00:35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0)
최근의 목표는 언제나 "영어완전정복"이라는 촌스런 것이기 때문에, 한글 텍스트를 읽는 동안은 일종의 죄의식에 시달리는데, 그 죄의식을 동반하고서도, 소설책을 한번 집어들면 놓을줄을 모른다.
줄곧 무엇이 나를 이렇게 '읽게' 만드는 것일까 하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에 고 김현 선생의 '행복한 책읽기'를 읽다가, '과연 그런 것이었나'하는 글을 발견했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내 생각으로는, 자기의 욕망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것이 무엇에 대한 욕망인지가 분명하면, 그것을 얻으려고 노력하면 된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면, 무엇을 왜 욕망하는지를 우선 알아야 한다.
그 앎에 대한 욕망은 남의 글을 읽게 만든다.
남의 이야기나 감정 토로는 하나의 전범으로 그에게 작용하여, 그는 거기에 저항하거나 순응하게 된다.
저항할 때 전범은 희화되어 패러디의 대상이 되며, 순응할 때 전범은 우상화되어 숭배의 대상이 된다.
나는 누구처럼 되겠다가 아니면, 내가 왜 그렇게 돼가 된다.
그 마음가짐은 그의 이름붙이기 힘든 욕망을 달래고, 거기에 일시적인 이름을 붙이게 한다.
왜 일시적인가 하면, 전범은 수도 없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구조는 그렇게 많지 않겠지만. -
난데없이 기록하고 싶어진 독서 근황. "1Q84"는 읽자마자, 한글 번역본으로 읽고 싶다는 뉴욕의 미술평론가 M씨에게 보냈고, 김연수의 "세상의 끝 여자친구"는 홍콩에서 어학연수 중인 L 선배에게 보냈다. 추석명절에 다시 읽은 "친절한 복희씨"는 엄마에게 기증하고 돌아왔다. 김연수의 "밤은 노래한다"는 근래 꽤 재미있게 읽은 책이기 때문에 다시 읽고 싶을까봐 분양보내지 못했다. 최근 나의 스트랜드 숄더백에 들어있는 책은 지난달 미국을 떠나오기 바로 전날 구입한, 역시 스트랜드 스티커에 스트랜드 책갈피가 끼워져 있는 하루키의 "Blind willow, sleeping woman"이다. 24편의 단편 모음집. 지하철에서 읽기 안성맞춤이기 때문에 휴대하고 있다. p양이 강력히 추천하며 빌려준 코맥 맥카시의 "로드"는 아직도 절반의 진도밖에 나가지 못한 상태. 너무 암울하고 우울해서, 왠지 손대기가 싫다. 그녀가 너무너무 강력하게 추천하였기 때문에 왠지모를 반감이 드는 것일지도. 마치 베스트셀러 소설에는 손이 안 가는 것과 비슷한 심리인가.
# by | 2009/10/10 17:17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0)
# by | 2009/09/02 11:18 | 까르르수다판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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