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를 끌어내고 새긴다_강요배 작가론 2018/06/04 18:00 by 이나연

코끼리를 끌어내고 새긴다.

 

코끼리를 본 적이 없는 이에게 코끼리를 설명하는 일이란 쉽지 않았다. 코가 2미터는 되고, 귀가장정의 등짝보다 크고, 다리는 늙은 가로수 둥치같다고 했을까? 지금처럼사진으로 코끼리를 볼 수 없던 시절,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괴생물체를 그림으로 설명해야 했던 데서 한자어코끼리 상의 어원을 찾는다. ‘이란 글자는 형상, 인상, 추상, 표상, 대상, 상징 등 다양한 단어들과 결합해 변주되며 코끼리 외의 상들을 표현해 왔다. 인상은상을 각인하는 일, 추상은 상을 끌어내는 일, 심상은 상을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강요배식 미술사전에 따르면 그렇다. “?”하고 인상을 받아, “아하!”하고깨달은 상을, “~!”라는 감탄이 나올 때까지 끌어당긴다. 화가는 이렇게 깨달은 상을 관객의 마음에 고스란히 전해야 한다. 타인에게작가가 포착한 상이 전해지고, 그 상이 또 다른 이의 마음을 움직이고그 감응이 오랜간 새겨질 정도의 완성을 위해 부던히 고민하고붓을 움직인다. 그 표현과정에는 붓 대신 돌과 빗자루, 칡뿌리가동원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일에는 꼼수가 통하지 않는다. 정공법만이 유일한 길이다.

 

화업 50년이 넘은 강요배에게 새삼 코끼리가 화두다. 5월 말로 다가온 개인전의 제목은 <상을 찾아서>. 2년간 찾아낸상에 대한 고민들이 23점의 신작에 담겼다. 강화백에게 인상, 추상, 심상은 미술사에서 정의하는 바와 조금씩 닮기도 다르기도 하다. 인상주의란 찰나의 인상을 그리는 게 아니라, 인상 이후에 상을 더깊이 들여다 보고, 더 정확하게 새기는 일이다. 추상이란사실 세상 모든 사물을 보는 방식이다. 사물을 제각각의 시선으로 보는 이상, 모든 사물은 추상화된다. 머릿 속에서 1차로 추상화된 상을 화면에 옮기는 과정은 코끼리를 좀더 정확히 끌어 내고, 그림을명료화하는 일이다. 구상이 눈으로 보는 정확한 상을 표현하는 일이고,추상은 구상을 벗어난 애매한 형상들이라는 막연한 이해에 반하는 의견을 내놓는다.   

 

<돌아오지 않는 길냥이> 20분만에 화면으로끌어낸 길냥이의 상이다. 몇 달간 사귄 길냥이를 마음에 새겼다가, 화면으로끌어내는 일에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다시 말하지만 눈을 가진  모두는 각자의 시각과 방식으로 사물을 보기 때문에 모든 사물을 보는 방식은 추상화를동반한다. 특정 장소의 특수한 대상은 중요치 않다. 시선이중요하다. 화가의 일이란 이 시선을 전하는 것. 사물의 표면적인이미지가 아니라, 시선으로 관통한 느낌과 기운을 강조해 끄집어내는 일이다. 이 느낌을 끄집어 내고, 자잘한 것들을 버림으로써 형성된 어떤 상, 이것이 곧 그림이 아닐까. 기억에 남는 인상을 그리는 일이란 정직한화가에겐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단시간에 잡아낸 상 앞에서 화가는 많은 시간을 자기 검열과 자기 비판에쏟는다. 관객이 공감대를 찾아낼 수 있는 지점, 앞에서 말한아하!’지점을 놓치지 않도록 긴 시간을 그림 앞에서 보내기시작한다. 그리는 시간이 아니라 찾는 시간, 즉 손을 움직이는시간이 아니라 관객의 마음에 그림이 전달되는 지점을 찾는 시간이다.

 

2017년과 2018년 초반에 걸쳐 작업한 신작 23점들은길냥이처럼 화가의 시선에 잡힌 주변의 모든 것들을 담았다. 바람, 구름, , 바다, 눈 등 주변의인상을 남겼더니 자연이 담겼고, 세상이 담겼다. 그림은 당연하게도작가가 마흔살에 귀향해 살고 있는 제주의 풍경을 닮았다. 제주의 이야기를 하자면, 강요배를 대표할만한 4.3사건을 취재한 연작을 이어 말할 수밖에없는데, 작가는 신작 위주로만 말을 잇는게 좋겠다고 전했다. 서양미술사에없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고,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싶다. 아직도그의 신작들은 새롭고, 앞으로 나올 작업들도 새로울 것이다. 매초변하는 바람과 빛, , 파도처럼 강요배의 그림이야말로 반복을거듭할 새가 없다. 평론가 최석태는 강요배의 이 경지에 대해 모험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땅에서 오래전부터 알게 모르게 몸으로 익히고있는 미학에 근거한 모험이라는 것이다. 지구 위에서 가장연교차가 큰 우리의 기후조건과 팍팍한 사회환경 속에서 위태로운 삶을 겸허히 살아가는 미학을 온몸에 익혀서 보여주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강요배에게 화가가 되는 일이란, 평생에 걸쳐 작업을 하는일이란 모험이 아니라 순리에 가까워보였다. 할 수 있는 일이 이것 뿐이란 겸손한 발언을 차치하고서라도, 화가가 되는 과정에 그 어떤 불편함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에겐 태어나면서부터인상을 잡아내고 화면에 새기는 일은 자연스럽고도 쉬운 일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그 좋은 손은 깊은 시각을만나 세상이 만들어내지 못했던 화면을 선물했다. 이제 또 한번 선물을 받으러 가는 시간이 왔다. 그의 새로운 시선을 담은 신작을 볼 수 있는 <상을 찾아서>전을 마친 뒤엔 릴레이로 구작도 한번 더 소개한다.

 

<상을 찾아서> 이후에 열리는 <Memento-동백>전은 제주 4.3을 그린 이전 작품들을 소개한다. 작가는 구작에 대해 말하기는 주저하는 듯했다. 젊은 평론가의 글로, 굳이 신작을 기록하길 원하는 화백의 말 사이에서 나는 취재 전에 읽은 글들을 더듬고 있었다. 4.3 유족들의 증언을 듣고 그것을 작품으로 풀어내는 기간, 화백은몸과 마음의 건강을 해쳤다고 했다. 약해진 체력이 다시 제주로 귀향해 버린 이유였다고도 읽었다. 화가가 직접 적은 글도 읽었다. 30대 후반, 생활의 어려움 속에서 심신은 극도로 쇠약해져 있었다고. 그렇게 제작한작품들이 <동백꽃 지다>라는 책으로 엮인 증언과그림일 것이었다. 어떤 슬픔은 언어화되고 형상화되기 어렵다. 제대로말하기엔 슬픔의 크기가 너무나 크기에, 전달과정에서 모든 것이 희석되고 일반화될까봐. 섣부르고 부정확한 전달에 대한 공포를 안고 작업을 하는 이들은 틀림없이 많이 앓았으리라.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화백은 여전히 그 작품들을 언급하는 것이 힘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에 가서 전하는 말은 결국 절망 속 희망이다. 화집 <동백꽃 지다>에쓴 작가의 글 마지막엔 이런 문장이 있다. “삶이란 무엇인가? 죽음의그림자를 끊임없이 걷어내는 일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것은 언제나 천하에 가득할 것이다. 절망을 딛고 올라서는 곳에, 새봄의 꽃처럼 생이 있는 게 아닐까?”

 

강요배의 작업실을 찾는 일엔 막걸리가 동행돼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제주의 바닷가 마을 귀덕에서도 한갓진 계곡 옆, 바람이 많이 부는움품 들어간 지대에 놓인 작업실에 찾아가는덴 예의처럼 막걸리를 잔뜩 사들고 가야 한다고 들었다. 빈손으로 터덜터덜 찾아갔지만, 과연 화백은 인터뷰 끝무렵 막걸리를 청했다. 비행기 시간과 밀린 마감같은 속세의 일정에 시달리는 이들은 끝내 거장과 술을 마시는 기회를 뒤로 미뤘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허수경의 시 <불취불귀>를 떠올렸다. 너무 쓸쓸한 듯하여, 너무 고귀하여, 조금은 내게 초현실적으로 느껴진 그 작업실은 취하지않으면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은 길, 이라는 생각을 했다. 제주의 4.3, 혹은 그와 연관해 그려놓은 그의 작업들이 화백에겐 불취불귀겠구나싶었다. 어쩌면 막걸리와 함께라야 <동백꽃 지다>의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었겠구나라는 짐작도 했다. 짐작은했지만, 취하지 않았음에 돌아가지 않았다

 


_퍼블릭아트 5월호 

 


까르르수다판 씨위드 3호, 아티스트 지구대백과 2018/04/18 13:10 by 이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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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제주에서의 사적인 글로컬 실험 -제주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2018/01/14 22:13 by 이나연

제주에서의 사적인 글로컬 실험

-제주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글로벌 예술 프로젝트와 전시, 기관을 후원하는 비영리조직인 루마파운데이션의 대표 마야 호프만(Maya Hoffmann)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2013년부터 시작한 루마 아를 건립에 관한 질문들이 많았다. 2018년완공 예정인 루마 아를 프로젝트는 프랑스 아를지역에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건물을 짓는 것을 포함 150밀리언유로(200억원 가량)의 비용을 들일 예정이었다. 반 고흐가 머물렀던 곳 정도로 유명한, 남프랑스의 휴양도시인 아를지역 전체를 예술도시로 탈바꿈 시킬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장본인이 바로 마야 호프만이다. 그는세계 미술계의 주요 행사를 쥐락펴락하는 거물 후원자이자 유명 기관들의 이사로 활약하기도 한다. 작은도시를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만들겠다는 포부가 내비치는 프로젝트를 이끄는 이에게 작금의 젊은 기획자나 작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자 돌아온 대답은다음과 같다. “세계적이기 전에 지역적이어야 합니다. 하지만세계적인 반향을 노려야겠죠. 당신의 시간을 살고, 담력을가지세요.(Be local before you become global, but aim for globalresonance. Live with your time and be courageous.)”

 

제주에서 나고 자라며 도시에 대한 열망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다.운이 좋아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공부를 할 기회가 있었고, 외국에서 생활하며 양껏 견문을넓힐 기회도 얻었다. 7년을 서울에서 7년을 뉴욕에서, 그렇게 14년에 가까운 기간을 제주를 떠나 있다가, 다시 돌아오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마야 호프만의 문장이 도움이 될 것 같다. 내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내가 세계적 시각을 가지고 나의 시간을 산다면, 그활동 무대는 좁은 지역이 아니라 넓은 세계가 된다는 것. 대도시에 살더라도 나의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따라 운신의 폭은 두메산골에 사는 것처럼 좁아질수도 있고, 그 역도 가능한 거였다. 진부하다는 비난이나 이상적이라는 비판이 동시에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마야호프만이 재력과 능력을 가지고 벌이는 지역적 활동과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지적도 충분히 가능하다. 맞는말이다. 그래서 사실 나의 글로컬-지구적(global)와 지역적(local)의 합성어로 지역 특성을 살린 세계화를이르는 조어- 도전은 안전한 취직과 함께 시작된다.

 

그리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라 민망하다. 2015 4, 취업과 함께 제주로 돌아왔다.뉴욕에서 제주로 바로 들어온 이주였다. 2014 10월개관한 아라리오뮤지엄 제주에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 입사했다. 내 변호를 하자면, 대기업 헤드헌터에게서나, 프리랜서로 기고하던 매체에서 좋은 직책으로취업 제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제주에서 큐레이터 보조라니, 고개를갸웃거리는 이들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타당한 선택이었다. 일단뮤지엄을 세운 아라리오란 기업 자체는 미술계에선 일할만한 직장이었다. CEO가 세계적인 컬렉터인 까닭에, 뮤지엄에서 다루는 작가군과 작품이 실로 세계적인 수준이었다. 천안이라는지방에 본사와 갤러리를 두고 성장한만큼 문화적인, 특히 현대미술의 색이 짙은 기업이었다. 천안에 이어 제주라는 지방에 뮤지엄을 세울 만큼 지역을 중심으로 두고 일을 도모하는 데는 충분한 노하우가 있는곳이었다. 그러므로 추상적인 개념에 머물던 글로컬을 학습하고 체험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고 지금도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문화적으로 척박하던 내 고향 제주에서 우고 론디로네, 피에르 위그, 장 환, 수보드굽타 등 세계적으로 가장 잘 나가는 작가들을, 혹은 작품들을 다루고 이해하며 일을 할 수 있게 된 것은아라리오뮤지엄 덕이었다. 그 뮤지엄의 설립이 내 귀국을 빨라지게 했고(늘제주로 돌아올 틈을 노리는 중이었다), 제주로 돌아와 많은 관심과 도움을 받았다. 문화계의 젊은 기획자가 부재하던 터에, 제주 출신의 젊은이가 신선했는지, 많은 분들이 과분한 애정을 보여주셨다.

 

2013년 이후의 제주는 변혁의 중심에 있다. 개인적 이야기로 한정해 풀어야 할만큼, 문화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제주는 소화하기 힘든 격변을 치르는 중이다. 한해에 몇 개의 아트페어나 페스티벌이 열리는 등 미술과 연관한 다양한 문화행사들이 쏟아지듯이 열렸다. 문화공간도다양한 모습으로 문을 열었다. 아트센터로 재탄생한 구제주대학병원 이아라든가, 산지천 공원에 문을 열게 된 산지천 갤러리는 물론 문화공간양, 아트스페이스씨 등 작품전시 공간이며 레지던스가 시작되거나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는 기간이었다. 현재 제주에서 전시를 할수 있는 문화 공간은 어림 잡아도 50여곳에가깝다. 인프라가 구축되며 좌충우돌하는 기간,  제주는 문화적 활력이 넘쳤고 문화예술 관련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지역에서의정착은 어렵지 않았다. 무려 첫 일터는 내가 고등학교 시절 영화를 보러다니던 탑동시네마에 생긴 미술관이었으니까. 탑동시네마가 1999년 개관 당시 선물받았을, 커다란 전신거울이 계단참에 그대로 있고, 이전에 쓰였던 타일이 과거의쓸모를 추억하며 감각적으로 남겨져 있기도 했다. 비엔날레나 해외를 다니면서 보던 유명작가의 대형작품을내 추억이 깃든 고향 공간에서 본다는 것은 글로컬이라는 개념의 시각화와 다름없기도 했다. 의미있는 경험이었다. 다만, 사업주의 취향과 컬렉션에 전적으로 의존하게 되는 사립미술관에서스텝으로 일한다는 것엔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직장에 기대지 않더라도,제주에는 이미 충분히 많은 일거리가 있어 보였다. 귀국 전에 가장 큰 걱정거리였던 제주에일거리가 없으리라는 오해는 1년여간 직접 살아보며 말끔히 해소됐다. 그래서 2016 6, 퇴사했다. 퇴사 후 스코틀랜드 글랜피딕 국제 레지던스에 참가하게 된 작가 남편을 따라 두달여간 스코틀랜드에 다녀왔다. 미국, 영국, 호주, 중국, 인도 등 9개국으로부터참가한 작가들이 3개월간의 레지던시 기간 동안 한적한 시골에 머물며 작가들끼리의 교류는 물론 마을 사람들과소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글랙피딕이라는 스카치위스키 양조장과 양조장이 모여있는 일대야말로 글로컬의 구현과도같았다. 계곡의 맑은 물에 의지해 스코틀랜드에서도 한참 외곽의 시골지역에서 만들어진 위스키는 이제 전세계에팔려나간다. 이제 이 세계적인 위스키는 세계 아티스트들을 불러모아 그 지역에서 영감을 받고 작품을 제작하기를기대했고, 각 나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작가들끼리의 네트워크는 글렌피딕이라는 이름 하에 활발히 이뤄졌다. 그 나라에서는 유명한 작가들이기에 각 나라의 미술관련 종사자가 작가를 만나기 위해 방문했고, 그 시골 안에서 하나의 아트씬이 만들어졌다. 레지던스의 결과를 발표하는전시의 오프닝날 시모임을 하는 지역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시낭송회를 하기도 하고, 마을의 댄스모임이나행사에 작가들이 참여해 즐기기도 했다.

 

그렇게 스코틀랜드 더프타운이라는 시골마을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같은 해 9월 초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더프타운과 비교했을 때 제주는 큰 도시였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었던 것이고, 더프타운은 더프타운대로 제주는 제주대로지역적 특성을 활용한 문화활동을 하면 되는거였다. 다시 말하지만, 뉴욕이라는대도시에서, 제주라는 지역으로 급격한 이주를 겪으며 우려했던 문화관련 직업을 유지한 채로의 정착은 가능한것으로 확인됐다. 제주도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 라고 누군가묻는다면 두어시간은 얘기해줄 컨텐트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제 다음 과제. 어떻게 이 지역에서 세계적인 반향을 노릴 수 있을까? 이 부분에있어서 그간 세계의 무수한 로컬에서 다양한 형식의 실험이 있어왔다. 아마 비슷하게 비엔날레, 아트페어, 레지던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해 어떤 지역은 실효를 거두고어떤 지역은 실패를 경험했다. 더프타운의 글랜피딕 레지던스는 한 기업의 든든한 후원을 바탕으로 성공적으로이뤄지고 있는 프로그램의 사례였다. 그렇다면 제주는? 세계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제주에선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어떻게 성공으로 이끌 수 있을까?

 

빈약한 경험과 자본으로 지역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엔 사실 한계가 있다. 하지만, 나같은 개인이 여럿이 된다면 얘기는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게다가 요즘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있지 않은가. 내가 제주에서 책을내거나 전시를 하면, 미국, 일본, 유럽의 친구들이 같은 정보를 공유한다. 그 친구들의 활동이 내게도실시간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그 범위의 정도를떠나 해외 커넥션을 유지한 개인들이 제주로 더 돌아와 준다면 한번 신나게 놀아볼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2016 11월 말, 런던에서 8년째 안 돌아오고 있는 고향 후배를 끌어내 제주에서 전시를 열었다. 석사박사를 거치며 확장한 현지 인맥도 풍부하고, 그룹전과 페어 등을 통해 현지에선 꽤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작가다. 테이트 미술관에서 바리스타로 알바하며 작업하는 이 후배의 전시 제목은 테이트의 바리스타.” 그 친구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독일에서 /못돌아오고 버티는후배와 동기들을 계속 불러볼 생각이다. 제주에지내면서 세계를 조망하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가끔 밖으로 놀러나가 다시 제주를 생각해보는 일이 어찌나신기하고 신나는지 그들과 공유해 볼 생각이다. 그리고 궁극적 목적은 그들을 제주에 눌러 앉히는 것. 그렇게 그들의 친구들과 나의 친구들을 다시 엮어, 제주라는 지역을중심으로 신나게 놀아보는 일이 내가 꿈꾸는 글로컬이다. 글의 서두에 언급한 마야 호프만이 십여년째 함께일하는 작가와 큐레이터로 꾸린 핵심그룹이 있다. 리암 길릭, 필립파레노,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 베아트릭스 루프, 톰 에클레스로 이뤄진 이 어벤져스같은 모임은 루마 아를의 자문이라는 명목하에 모인 동시대 가장 잘 나가는 작가와기획자다. 루마 아를의 미래는 호프만 혼자만이 그릴 수 있는 그림은 아니었다.  

 

내가 제주로 돌아오자마자 낸 사업장의 명칭이 퀠파트다. 출판업을하는 곳으로 등록한 이 이름은 유럽고지도에 표시된 제주의 옛 지명이다. 아주 오래전 외국인의 시선은제주를 퀠파트라 명했고, 이제 제주인의 시선으로 새삼스럽게 그 퀠파트를 다시 보고 싶어졌다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로터스 랜드>전 서문 2017/11/25 20:22 by 이나연

연꽃 위 보석

모두 어디로 갔을까? 눈에 보이지 않거나 말하지 않는 자는 대체로 약자로 상정된다. 젊은 작가가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혹은 젊은이들의 패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그들이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고. 어느 명분만들기 좋아하는 기관의 컨퍼런스였던가. 청년과 청년작가들의 실태를 말하는 자리에 여기저기서 한자리를 꿰찬 청춘의 시기를 한참 전에 보낸 분들만 앉아있는 것을 보고 진심으로 궁금했다. “이들이 논하는 그 문제많은 청년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위대한 여성작가가 미술사에 없던 것을 궁금해 한 미술사학자처럼, 흑인 혹은 아시안 작가가 대형미술관 컬렉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불만이던 작가처럼, 파리 중심으로 돌아가던 현대미술씬이 뉴욕이라는 신생도시로 옮겨오면 안되는 건가 싶었던 미술평론가처럼, 태초의 모든 궁금증은 해답을 원했고, 행동을 끌어냈으며, 운동을 만들어냈고, 결국 소기의 성과를 거둬냈다. 지금은 청년이 궁금한 시절이다. 그런데, 유난히 청년이 궁금하던 문화계에 희미한 답들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광주 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로터스 랜드>전은 그런 전시였다. 숨은 청년들의 목소리를 끄집어내 담론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시대의 요구를 읽어내고, 시대의 목소리를 들려줘야 하는, 전시가 해야하는 순기능에 충실했다. 이 전시를 설명하는 헤드라인은 선명하다. “2030 청년 아티스트들의 <로터스 랜드>: 미술·공예·패션·건축·영상·무용·출판 등 20-30대 아티스트 36여 팀 43명 참여 전시.”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활동하는 젊은이들을 로터스 랜드에 ‘입주’시켰다는 컨셉도 시대정신을 반영하기는 마찬가지다. 재산을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데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의 작가들은 어느 공간이든지 집처럼 편안하게 ‘공유’한다. 원형구조물 안에 한 칸씩의 전시공간을 부여받은 작가도, 중앙의 열린 광장에 작품이 노출된 작가들도 있지만, 그들은 방에 숨은 듯 광장에 노출된 듯 따로 또 같이 공존한다.

문학계에선 <82년생 김지영>이 베스트셀러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82년도에 태어난 보통여자 김지영이 겪은 한국현대사를 부담스럽지 않은 서사로 펼쳐낸 책이 밀레니얼 세대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어내며 출판의 역사를 새로 쓰는 중이다. 82년생인 내 개인사를 더듬어가더라도 중학교 동창 김지영, 고등학교 동창 김지영 A와 B, 동네 친구 김지영까지 수많은 82년생 김지영이 떠올랐다. 책읽는 내내 김지영이 나였다가, 내 친구였다가 다시 나이기를 반복했다. 한 시대를 산다는 것은, 그가 속한 사회를, 타인들의 고정관념을, 남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을 견뎌내는 일이다. 그 과정은 그 시대를 함께 살아온 이들이 알게 모르게 공통의 DNA를 몸에 새기는 일이었다. 새겨진줄 몰랐던 각인이 자꾸만 날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던져놓곤 했다.

그러니까, 82년생 김지영들을 밀레니얼 세대라고 했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세대.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 활용에 능하며, 2007년의 글로벌 금융 위기를 체험한 세대. 내가 포함된 세대를 일컫는 그 명명은 1991년 발간한 <세대들, 미국 미래의 역사>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됐다. 월소득이 88만원밖에 안된다는 88만원 세대였다가, 무수한 것들을 포기하며 산다는 N포 세대였던, 이런저런 무기력하고 부정적인 단어들만 잔뜩 붙는 것에 비하면 다행이었다. 긍정적이진 않더라도, 적어도 부정적인 뉘앙스는 내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에 찾아올 것 같지 않은 밀레니엄을 가뿐히 넘긴 세대라니, 어쩌면 긍정적으로 들렸는지도 모르겠다. 과연 밀레니얼 세대인 나는 88만원보다 못한 월급을 받으며 일한 기억이 있다.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직장을 포기하고, 책임질 수 없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했고, 내 집 마련의 허황된 꿈을 꾸지 않고, 저축을 부정하며, 고단한 서울살이를 접었다. 미래를 꿈꿀 여건이 안돼 현재만 사는 이 세대를 두고 2013년에 <타임>지는 ‘나나나세대(Me Me Me generation)’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사회의 기준이 아니라 지금 현재 개인이 처한 상황에서의 행복과 성공을 추구하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족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 조건에서 만족을 찾기 위해 청춘들이 스스로에게 거는 최면 비슷하다.

변방, 그것도 대한민국 최남단의 섬에서 태어났다. 그림을 잘 그린다는 쓸데없는 공교육 속 수상제도에 속아 당시만해도 가장 유명했던 미술대학에서 유학했다. 미술대학은 정말 세상에 쓸모있는 그 무엇도 가르쳐주지 않는다는 사실만 배우고 졸업했다. 그 즈음, 88만원이 안되는 월급을 받으며 사회초년생 생활을 시작했고, 해외유학을 다녀오면 뾰족한 수가 생길까 하여 안되는 영어를 공부해 유학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 모든 시대의 요구에 부응했으나, 나 역시 일할수록 가난해지는 기묘한 패턴에 휘말려 살아가고 있다. 사회가 정답이라 말하던 모든 것에 진절머리가 났기 때문에 난 이제 사회가 가지말라는 길만 찾아서 가려는 중이다. 그 좋다는 미국 영주권을 버리고 난데없이 변방 중의 변방 제주에 자리를 잡았으며 (참고로 이효리만한 재력가도 능력가도 아니다.), 출판산업이 망한다는 시점에 출판사로 스타트업을 시작했다. 있던 잡지들이 문을 닫는 마당에 글로벌 문화잡지를 만든다고, 잡지를 무려 한영판 별도로 제작하고 있으며, 웹진은 서비스로 운영하는 중이다. 남편과는 결혼식도 혼인신고도 하지 않고 살고 있고, 근근히 원고쓰고 강연하며 번 돈은 다시 전시보고 취재하며 여행을 다니느라 다 써 버린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반항으로 철저히 현재만을 살고 있다.

아마 나같은 이들을 조망하고, 연구하고, 발굴해서, 모아둔 전시가 <로터스 랜드>일 것이다. 아시아문화전당의 문화창조원 복합 2관의 전시 공간은 판옵티콘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 조망하는 감시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중앙의 공간에 서먼 1층과 2층의 방들을 빙 둘러 볼 수 있다. 광장의 개념이 도입된 판옵티콘이라고 볼 수 있다. 감시자 혹은 관찰자가 가장 노출이 잘 되는 구조로, 각 방에 거주하는 개인들은 노출되는 동시에 숨을수도 있다. 감시를 용이하게 하는 판옵티콘의 구조를 가지되, 유연한 노출과 숨김이 가능한 공간이기도 하다. 이 공간의 의미를 효과적으로 묘사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중앙공간의 페인팅들은 반사되는 거울형식의 상이 투영되는 판 위에 디스플레이 됐다. 그림을 보는 관객이 다시 배경에 비춰지는 구조다. 전시설명문과 제목 역시 거울판 위에 선명치 않은 색으로 쓰여있다. 이 전시를 관통하는 정서는 상당히 동양적이다. 로터스(연꽃)을 대대적으로 내세운 것도 그렇거니와, 거울에 관객의 상을 비추고 다시 공간이 비춰지는 구조는 불교의 인드라망(인드라 신의 그물에는 그물코마다 구슬이 달려 있고 구슬들끼리 서로 반사되며 신비로운 세상을 만듦)을 떠올리게 한다. 신비로운 공간 속 청춘들이 내뱉는 다양한 언어들을 살피다보면, 이 공간들은 전시의 기획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세어하우스같기도 하고, 닭장같은 고시원 같기도 하다.

송원재는 단편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곳이 영화제와 같은 한정적인 공간뿐이라는 사실에 의문을 가졌다. 상영 기회를 얻기 위해 매번 평가를 받는 시스템이 사회의 권력 구조와 닮았다고 여겼다. 사회 속에서 언제나 약자였던 것 같은 입장에서 영화를 제작할 때는 감독, 연출자의 권력을 누리는 이중적인 모습을 영화에 담았다. 광주의 오픈예술구역 ‘바림’의 강민형과 최지혜는 지방과 서울의 간격을 좁히는 방법을 고민하여 활동한다. <후방가르드적 착상>은 그가 운영하는 바림이 쇠락하는 과정을 담은 시나리오로, 서울과 광주의 신생공간들에서 실제로 벌어진 일들을 토대로 작성했다. 강나검, 박시영은 예술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광주에서 서브컬처를 확산시키고 싶은 마음을 담은 <사심지>를 발행한다. 전시에는 <언젠가는 페스티벌>이라는 가상의 페스티벌을 소개한다. 광주에서는 이뤄지지 않은 수도권 중심의 문화행사들을 가상으로 열어본다. 이한별, 조진경은 건축을 기반으로 공공예술의 영역을 넘나들며 작업한다. 참여작 <곰도리>는 전시장의 안쪽이 아니라 바깥을 향해 바라보도록 설치된 작업으로, 관객들은 곰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방향을 함께 바라보면서 전시장의 방을 각각 개별의 집합이 아니라 특정적인 장소 전체로 인지하게끔 유도한다. 임솔은 한글 레터링 작업을 비롯한 다양한 그래픽 디자인 활동을 하고 있는 디자이너로, 깃발과 그래픽의 형태로 다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는다. 현대예술과 퍼포먼스를 전공한 이시인은 <나는 바다 한가운데에서 물이 보인다고 말할 수 없었다>라는 작품으로, 질문과 대답의 경계가 허물어진 ‘짧지만 오래된 대화’를 한다. 할로미늄은 전시의 또 다른 참여작가인 햇빛서점의 박철희가 디자인한 천으로 드래그 퀸 ‘모어’를 위한 드레스를 제작한다. 이 드레스는 전시 오프닝에 ‘모어’ 퍼포먼스를 위한 의상으로 사용된다. 드러머 출신의 권용만은 <몬도 코리아, Mondo Corea>라는 영상작업을 소개한다.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올라오는 한국의 영상과 음악을 보정없이 조합해, 한국의 민낯을 보여준다는 의도다. 재봉틀로 제작 가능한 다양한 물건들을 만드는 무학사의 디자이너이자 운영자인 손정민은 <자수해서 광명찾자>는 작품에서, 자수에 숙련되기 전의 ‘훈련의 과정’을 담은 영상을 소개한다. 김영빈은 전직 타투이스트로, 이번 전시엔 <트루바다 람바다>라는 설치작품을 소개한다. 제주에서 활동하는 박주애는 <피를 데우는 시간>이라는 회화작품을 통해 고단한 생업을 마치고 목욕탕에서 하루의 피로를 푸는 이들을 반인반수의 캐릭터로 그려내며 상상력으로 각종 경계를 무너뜨린다. 무용가 신혜진은 <언어수행>은 말이 아니라 몸으로 새로운 언어를 창조해 소통하는 개념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조윤국의 <상실의 섬>은 과거의 기억이 남은 흔적들이 파괴적으로 공간을 재생산하는 현장과 맞물려 사라져가는 모습을 담는다. 서울메탈 조유리의 <서울 황동 유두 모양 장신구>는 기존에 ‘유두’를 모티프로 했던 장신구 작업을 발전시켰다. 재개발 공간의 세입자이자, 그 세입자들을 돕기 위해 결성된 테넌트북스는 책을 위한 가구인 <세입자를 위한 가구>를 출품한다. 철가방으로 만든 이 책장은 끊임없이 이동해야 하는 세입자들을 위한 제품이다. 송원재는 광주를 기반으로 다양한 실험영상들을 제작한다. <2088 Space Odyssey>처럼 고시원에서 공부하는 ‘고시생 B’의 일상을 담는 평범한 극영화도 제작하지만, 필름의 물성을 활용한 실험영화 제작에도 공을 들인다. 심은정은 조형물들이 가진 남성 권력적 상징성에 의문을 품고, 여성적인 부드러움을 <Soft Sculpture>로 표현한다. 문연옥은 철, 나무 등 다양한 재료로 오브제를 제작하고, 그 오브제와 어우러지는 공간을 연출한다. 이번 전시에는 흙을 재료로 한 도자와 철의 특성 등을 탐구한다. 개미필름은 3명의 개미(정태석, 정광식, 김종혁)로 구성된 팀으로 전시 기간 중 <페스티벌 더 개미필름>을 개최한다. 다섯 가지의 섹션으로 나뉘는 이 페스티벌은, 개미필름의 처녀작을 비롯, 그동안 제작한 영화와 앞으로 제작할 영화로 구성되고, 관객과의 만남과 시사회도 마련한다. 뮤직비디오 연출을 하던 정용은 여의도에 있는 순복음교회의 설립 계기와 과정, 완공 시기를 다루는 짧은 다큐멘터리 <타일 3>를 선보인다. 우한나는 학사모나 성화같은 드라마틱한 오브제가 가진 고유한 기능이 왜곡되거나 망가진 재구성된 오브제를 창조해 불가해한 이야기를 연출한다. 최하늘은 스스로 연출가가 되어 배우를 캐스팅하는 상상부터 시작해, 그 연기자가 조각을 만드는 과정을 떠올리면서 <제 5막, 궁전의 큰 앞뜰>을 제작한다. 코우너스는 조효준, 김대웅, 김대순이 운영하는 그래픽디자인 스튜디오로, 그간의 작업들을 영상으로 만들어 소개한다.

이 많은 작가들을 적었지만, 아직도 빠진 작가들이 있다. 주목할만한 작품 몇 개에 간단한 설명과 평을 곁들이기 보다는, 할애된 지면에 최대한 다양한 형식의 작가들의 활동지역 혹은 작품에 대한 소개만을 넣었다. 이 전시가 지향하는 바가 그렇기 때문이다. 탈영역, 탈지역, 탈매체를 지향하며, 젊음의 감각과 작업방식들은 한 공간에 녹여냈다. 지금은 비록 고시원만큼 작은 방 한 칸을 차지하던 이들이 뉴욕 구겐하임의 로튠다를 혼자 채우는 날이 곧 오지 않겠는가 싶다. 오늘도 수련하듯 초월한듯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우리의 청춘들은 남몰래 주문을 외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옴마니밧메홈(모든 사람은 연꽃 위 보석이여)이라고.

-<로터스랜드>전 서문

이나연
82년생 이나연은 제주에서 태어났다. 성인기의 대부분은 서울과 뉴욕에서 보냈다. 전공은 회화와 미술평론. 2015년, 제주에서 글로벌 컨텐츠를 생산해내는 퀠파트프레스를 차려 <뉴욕지금미술>과 <뉴욕생활예술유람기>를 발행했다. 2017년 한영판으로 별도 발행되는 문화예술신문 <씨위드>를 창간했다. 현대미술에 관한 글을 쓰고, 전시를 기획하고, 강연을 한다.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비엔날레보다 스프리츠가 좋은 서너 가지 이유 2017/11/25 20:20 by 이나연

비엔날레보다 스프리츠가 좋은 서너 가지 이유

 

베니스만큼 이국적인 곳도 드물다. 베니스 본섬에 들어서자마자 이동수단은 오로지 배와 곤돌라, 튼튼한 두 다리 뿐이다. 자전거도 오토바이도 자동차도 이 섬도시에선허용되지 않는 문물이다. 바퀴와 모터달린 것들이 바삐 다니지 않는 길엔 오로지 사람, (술을 포함해서), 예술뿐. 베니스는 그렇게 비엔날레에 알맞고 예술가에게 적합한 도시로 탄생해, 곧 물에 잠긴다는 유언비어를 이겨내며 지금껏 건재하다. 비엔날레의존재이유에 대해 늘 의문을 가지면서도, 베니스비엔날레만큼은 궁금증을 찾지 못해 번거로운 여행일정을 짜고만다. 미술계 계륵이 따로없다. 안 보자니 찝찝하고, 보자니 치러야 할 기회비용이 크다. 막상 비엔날레에 도착하고 나면내후년 비엔날레에 오고싶다는 생각보다는, 고단한 일정을 소화하고 막대한 비용을 쓰는 이 잔치에 기어코안 오고 말리라 다짐한다. 그리고 결국 2년에 한 번, 난 다시 한 번 베니스 하늘 아래 소환되고 만다. 그러게나 말이다. 이렇게 안보고 못배기는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120년의넘는 기간 동안 전세계의 유명작가들을 한 도시에 꾸준히 불러모으며 올해 57회를 맞이한 베니스비엔날레혼자만의 힘은 아닐지도 모른다. 카페에서 마시는 싸고 진한 에스프레소와 건더기가 많은 봉골레, 새까만 오징어먹물 파스타, 다양한 해산물이 그득한 전채요리, 거품이 보글보글 올라오는 시원한 프레스코, 그리고 달콤하고 예쁜색의 식전주인 스프리츠를 거의 동시에 떠올리긴 하지만, 이렇게 투덜대면서도 곰곰히 생각하노라면 역시베니스 방문의 최대 명분은 비엔날레다. 결국 이 기간에 쏟아지는 빅뉴스에 궁금증을 떨칠수가 없는거다.

 

어트랙션이 하나둘이겠냐마는, 당연하게도 첫번째로 찾아봐야 할 것은 베니스비엔날레 본전시. 퐁피듀의 수석 큐레이터 크리스틴 마셀이 총감독을 맡아 자르디니와 아르세날레 전시장 두 곳에서 펼쳐진 본전시비바 아르테 비바말이다.마셀의 감식안을 통과한, 예술만이 가진 독특한 오라를 탐구하는 51개국의 120명 작가들이 모였다.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예술의 원류가 되는 작가의 영감이나아이디어에 생각은 가 닿기 마련이다. 그 철저한 파헤침을 증명하려는 듯, 참여작가들의 영향을 받은 도서목록이 자르디니의 방 한칸을 차지한다. 프로젝트명은 <내 도서관 공개하기(Unpacking My Library)>.1931년에 발행된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에세이에서 영감을 받아, 작가들의 책을 전시도 하고, 비엔날레 도서관에 영구 기증하기까지한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본전시에는 의도한 바겠지만 책이나 텍스트를 소재를 삼은 작품들이 많다존 라담(John Latham)과 겅 지안위(Geng Jianyi)처럼 책을직접 오브제로 사용하며 조형물을 만들거나 캔버스에 붙이는 작품들이 있었다. 리우 예(Liu Ye)는 거꾸로 단정히 놓인 몬드리안이나 릴케의 책을 나무패널에 아크릴로 그린 시리즈 <책회화>를 소개했다. 시프리안무레산(Ciprian Muresan)은 책을 잘라 쓰레기통에 담은 설치와 책에서 본 이미지들을 다시종이에 연필로 그려 벽지처럼 붙이는 작업을 보여줬다. 작고작가며 이미지만으로 친숙한 유명 작가들이 포진한와중에 주목할만한 젊은 작가들을 꼽는다면, 회화성에 천착하는 84년생홍콩작가 피렌제 라이(Firenze Lai)일 것이다. 실내에앉아 있거나 창문틀에 기댄 평범한 포즈와 풍경이 과감한 붓터치, 유기적인 선과 멜랑콜리한 색의 조화에기묘한 비례로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회화의 힘이 무엇인지, 그원류를 생각해보게 하는 젊은 작가의 과감한 페인팅임은 분명하다. 로즈 레이첼(Rose Rachel)에게도 시선을 둘 가치는 있다. 1986년 미국에서태어난 비디오 설치 작가로 역시 젊은 작가군에 속한다. 28세에 이미 미국미술계의 총아로 주목받으며승승장구를 이어가는 천재작가. 그리고, 하오 리앙(Hao Liang). 실크 위에 먹과 과슈로 작업하는 작가는, 중국의전통화 기법을 유지하면서, 동시대의 감각을 드러내는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마음과 손, 눈이 서로 통합하고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선 기술을 익히는데 긴 시간이 필요했다고 말한다.

 

명불허전을 꼽으라면 난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으로 <녹색조명-예술적인 워크샵>을 진행한 올라퍼 엘리아슨이다. 아름답고 스케일이 큰 특유의 연출을 보여줄까 하는 모두의 기대를 깨고, 정치적인이슈를 예술에 끌어와 난민이 참여하는 워크샵 형식의 공간을 꾸몄다. 비엔날레와 예술이 벌어지는 한 켠에서전쟁이 일어나고 난민이 발생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도록 독려하는 이 작품은, 예술로 둘러싸인 거대한 전시장에서예술의 모습을 하지 않은 워크샵의 모습으로 다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해보게 했다. 신선한 환기와자극을 주는 거장의 작품에 의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었거니와, 워크샵으로 만들어지는 녹색 조명은 여전히아름다웠다엘리아슨은 난민이 겪는 고통뿐만 아니라, 그 이면에 숨은 이야기들-밀수, 인신매매, 마피아 조직의 실상-까지다뤘다고밝혔다. “누구든지 하루아침에 난민이 될 수 있고, 다시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 내게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지만 미술을 매개로 난민에 대한 사람들의관심을 이끌어내고 싶다는 게 그가 난민을 주제로 삼은 이유다.

 

자르디니엔 김성환의 설치와 영상작품 <러브 비포 본드(Lovebefore Bond)>가 전시됐다. 작가의 여조카와 수단출신의 아프리칸 소년을 주인공으로내세운 감각적인 영상작업은 영상에 등장하는 추상적인 구조물이 다시 공간에 설치되는 방식으로 공명하고 있었다. 사춘기의불안정함, 미국사회 속 인종 문제 등의 주제의식이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중에 작가가 중시하는 음향과 영상을상영하는 공간의 의자 등의 세팅까지 정교하게 연출된 공간에서 관객들은 쉽게 영상에 몰입하는 눈치였다. 또다른 본전시 출품 한국작가는 이수경으로 <번역된 도자기: 신기한나라의 아홉 용>이라는 제목을 붙인, 그간 계속 소개해온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에서도 눈에 띄게 규모가 커진 5m짜리 대형작품을 제작했다. 상대적으로 큰 공간을 가진 아르세날레에 소개된 이 작품 외에도, 비엔날레기간에 <태양의 궤도를 따라서>라는 퍼포먼스를선보이기도 했다.

 

어트랙션 두번째는 역시 뻔하게도 베니스비엔날레의 국가관들이겠다.  2017년 베니스비엔날레엔  87개 국가가 참가했다. 국가관 전시는 자르디니 내에 위치한 30개의 상설 국가관과 베니스시내 곳곳에서 마련되는 비상설 국가관 전시를 아우른다. 자르디니의 국가관 투어를 시작할 때 가장 초입에서만나게 되는 스위스관은 처음부터 압도적이었다. 스위스 출신의 자코메티는 늘 모델을 세울 정도로 가깝던형제인 브루노 자코메티가 직접 건축한 연이 있는 스위스관에 국가대표로 참여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특정 국가를 대표하는 작가가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노력 덕에 비슷한 기간 테이트모던에서 회고전을 가지고 있던 자코메티의 국적이 영국인지 프랑스인지에 사람들은 관심이 없었다. 그저 실존주의를 탐구하던 자코메티라는 작가의 작업세계에 집중할 따름이다. 스위스관은비록 자코메티를 내세울수는 없었지만, 자코메티와 비슷한 영혼을 가진 스위스 출신 작가들을 소환하는 데는성공했다. 스위스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활동하는 캐롤 보브(CarolBove)와 알렉산더 버칠러와 테레사 허바드(Alexander Birchler& TeresaHubbard)는 자코메티의 작품 세계와 접속하면서 각자의 스타일을 살려낸 작품을 소개했다. 유약해보이는파란색 원통형의 수직 조형물은 자코메티의 가녀린 실존적 조각상에 대한 보브의 응답이다. 버칠러와 허바드는자코메티의 연인이었던 플로라 마요(Flora Mayo)를 소개하는 가상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무명의 작가였던 플로라가 자코메티와 같은 시기였던 1920년대에파리에서 공부한 과정을 리서치해 제작한 이 영화는 스크린의 앞뒷면에서 동시상영됐다. 한쪽은 플로라의알려지지 않은 아들의 2016년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처한 상황, 한쪽은플로라가 1929년 파리에서 겪는 상황이 보여지는 방식이다. 비슷한시기에 같은 장소에서 공부한 자코메티는 거장이 되고, 여성작가는 무명으로 남겨지는 상황을 시대와 공간, 게다가 세대를 뛰어넘는 독특한 연출로 암시한 것이다. 언제나 국가관의이야기들은, 국가관의 정체성을 약간 비꼬거나 탈피했을 때 매력적이다.

 

이에 반해 한국관 전시는 한국성, 혹은 아시아성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코디 최와 이완이 참여한 한국관의 주제는 균형을 맞춰주는 저울추를 뜻하는<카운터밸런스>. 미스터케이라는 제3의인물을 내세워 사진과 아카이브 자료로 산업화와 근대화 과정의 한국과 오늘날의 한국의 모습을 그릴 수 있도록 했다.전시장 외관은 카지노처럼 현란하게 꾸며 시선을 끌었는데, 독일관을 감상하기 위해 줄을 선인파의 시선이 닿는 쪽이 하필 한국관이었다. 외관에 작품으로 포장한 것이 많은 관객들의 뇌리에 남게되는데는 독일관의 흥행에 빚을 진 셈이다. 비엔날레 기간 내내 화제였던 독일관은 안네 임호프(Anne Imhof )<파우스트(Faust)>로 황금사자상을 거머쥐었다. 트라잘 해럴(Trajal Harrell)의 안무작품을 모은 퍼포먼스 회고전인 <후치쿠치>를 런던의 바비칸센터에서 관람하고, 임호프의 <파우스트>를 본 뒤에,뮌스터에선 알렉산드라 피리치(Alexandra Pirici) <새는 영토(Leaking Territories)>를 마주한나로선, 과연 2017년 현대미술의 왕좌는 퍼포먼스에 내어줘야겠구나라고말할 수밖에. ‘강렬한 인상을 받는다는 건 세계 공통의언어와도 같아서, 임호프의 황금사자상 수상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는 없어보였다

 

벨기에관의 더크 브랙만(Dirk Braeckman)은 축제같은 비엔날레의 중심에서 묵직하게 중심을잡아주는 노릇을 했다. 말끔한 화이트큐브에 흑백 사진 20여점이전시의 전부다. 현대미술의 왕좌 자리를 겨루는 미국관과 영국관이 과거의 명성에 비해 맥을 못 춘 느낌은있다.  미국관은 <내일은 또 다른 날>이라는 제목으로 마크 브래드포드(Mark Bradford)의 설치 작품을 소개했다. 불구로 태어나올림푸스 산에서 추방된 예술의 신 헤파이스토스를 상징하는 작품을 대표적으로 소개했는데, 어둡고 크고거친 느낌이 강하다. 영국관에서도 폐품 같은 거대한 설치 조각을 볼 수 있다. 필리다 발로우(Phyllida Barlow)는 석고, 합판, 시멘트처럼 강하고 거친 건축 재료와 합성수지, 섬유같은 부드러운 재료를 함께 이용해 추상적인 형태와 색채의 공간 설치 작품을 창조한다. 경계를 마구 넘나들며 종잡을 수 없는 장대한 상상력을 펼쳐내는 작가는 이번에 영국의 브렉시트가 주는 우울감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뉴질랜드의 리사 레이하나(Lisa Reihana)는 파노라마형식의 비디오설치로 거대한 전시장한 벽을 가득 채웠다. 필름과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형식의 파노라마에서는 하와이, 타히티, 퉁가, 호주, 뉴질랜드를 등 다양한 지역의 전통음악과 의식 등을 표현해낸다. 오스트리아의에르윈 웜(Erwin Wurm)은 오렌지 같은 엉뚱하고 불안정한 오브제에 지탱하는 퍼포머로 1분 조각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시도한 작가다. 이번에는 트럭을 수직으로거꾸로 세워 관객이 직접 작업으로 들어가 풍경을 내려다 볼 수 있도록 하면서 시선을 끄는데 성공했고, 전시장안의 관객참여를 유도하는 위트넘치는 작업들도 매력적이었다. 타이완에는 왕이 귀환했다. 테칭 시에(Tehching hsieh)라니. 젖은 종이를 넓은 공간 바닥에 나열해 깔아가는 과정을 담은 비디오 설치가 신작. 나머지는 모두 과거의 작품들이다. 왕의 내놓은 성과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시에의 작품을 처음 접한 이들에게는 신선했을지도 모르겠지만,비엔날레 고어들은 대부분 전세계에서 모인 현대미술의 전문가들일텐데, 별다른 고민없이 구작을소개하는 것에 그친 전시에 대해 긍정적인 커멘트를 달기는 어렵다. 이와사키 타카히로(Takahiro Iwasaki)는 금각사 등의 신사를 모델삼아 그 건축물이 수면에 반사되는 모습을 나무 모형으로정교하게 재현한 <리플렉스모델>로 일본관에 참여했다. 칫솔이나 수건 등, 주변의 사물로 정교한 모델을 만들어내는 <아웃오브디스오더> 시리즈로 유명한 작가다. 이와사키의 직조물에서 뽑은 런던 아이나 탑의 미니어쳐 건축구조물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지만, 칫솔 위에 세워진 송전탑의 정교함에선 눈을 뗄 수 없다. 관객이전시장 바닥에 머리를 넣어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위트있는 연출은 일본관에 긴 줄을 형성시킨 일등공신.

 

올해 베니스의 세번째 어트랙션은 피노와 허스트의 만남이었다. 프랑수와 피노 PPR그룹 회장의 공간인 '푼타델라도가나' '팔라초그라시'에서열리는 전시는 매번 비엔날레마다, 본전시 다음으로 찾는 중요코스이지만,올해는 유난했다. <난파선에서 건진 보물(Treasuresfrom the Wreck of the Unbelievable)>이란 제목을 달고, 데미안허스트(Damian Hirst)가 베니스에 착륙했기 때문이다. 전시예산만750억원. 50억원대 예산이 투입된 비엔날레의 15배에 달하는 돈을 쏟아부었다는 전시는, 어쩌면, 비엔날레보다 더 큰 어트랙션이었을거다. 허스트는시프 아모탄 2세’라는 2세기에살았다는 인물을 설정하고, 보물을 싣고 인도양에 가라앉은 배아피스토스’도창조해냈다. 이 난파선이 지난 2008년 발굴됐다는 핍진성있는시나리오의 증거물을 전시장에 나열한다. 시나리오를 탄탄히 하기 위해 제작된 작품에는 3가지 에디션이 있다. 허스트는 전시장에 산호 에디션과 복원판, 복제본을 나란히 전시하고발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풍 영화와사진기록물을 함께 전시했다. 높이 18m가 넘는 <그릇을 들고 있는 악마(Demon with Bowl)>는팔라초그라시 중앙공간을 가득채웠다. 완전히 청동 조각처럼 보이는 이 작품은 레진에 색을 칠한 것이라고. 진짜와 가짜를 수시로 왔다갔다하며 위태로운 줄타기를 하는 데 돈을 엄청 쓴 이 전시는 블럭버스터 영화 한 편을감상하고 나온 느낌과 비슷하다. 영화값이 아깝진 않지만, 두번 보고 싶다거나, 여운이 길다는 인상을 남기지는 않는. 같이이번 비엔날레에도 참여한 제이슨 테일러(Jason deCaires Taylor)의 수중 설치 조각품과 결과물이 유사한 점은 또다른 비엔날레의관람 포인트였다.

 

아마 지중해의 뜨거운 태양열 아래서 수행하듯 전시를 찾아보는 대부분의 비엔날레고어들의 심정이 나와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이 다람쥐 쳇바퀴같은 순례를 왜 평생에 한 번이 아니라 2년에 한번씩 해야하는건가. 비엔날레의 한국관에 코디최는 <소화불량에걸린 우주>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비엔날레란 언제나소화불량에 걸린 현대미술같은 형국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이 던져주는 질문들과 흥미로움은 다시또 기꺼이 소화불량을 감당하게 만든다. 이번 비엔날레의 총감독은 예술은 인간성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며예술만세를 외쳤다. 정말,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은 해맑게도만세, 예술 만세였으니까. 브렉시트가 터지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마당이다. 유럽 이곳저곳에선 테러가 일어나고, 북핵문제로 3차대전을 염려하는 이 시국에, 정말 어쩌면 가장 마지막까지 인간다움을유지할 수 있는 게 예술일까? <뉴욕타임즈>의홀랜드 카터는 지난번, 혹은 6년 전에야 이 전시가 유효했겠지만, 지금은 시국이 너무나 안 좋다며, 예술 만세를 외치는 게 전혀 와닿지않는다는 투로 총 기획을 노골적으로 부정적이게 비판했다. 카터의 의견에 일부분 동의하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우리는 예술만세를 외쳐야 할지도 모른다. 어둡고우울한 이야기로 가득한 뉴스지면에서, 한줄기 밝은 빛은 언제나 예술섹션의 몫이라 믿어본다. 전시만큼 처절하고 척박한 현실을 버티며 일구는 예술 만세, 예술가만세랄까. 글을 마치는 마당에 한번 더 마셀의 문장을 생생하게 옮겨보자. “휴머니즘이 심각한 위험에 빠지고 갈등과 심한 변동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예술이야말로 인류가 가진 것들 중 가장가치있는 부분이다.”

 

 -퍼블릭아트 10월호

 

글쓴이 이나연은 삶의 절반은 미술평론을 읽거나 쓰는 일에, 나머지 절반은 전시를 기획하고 작가를응원하는 일에 쓰며 산다. 제주에 집이 있고, 서울과 런던, 뉴욕 등에서 일을 한다. 삶의 대부분을 내 집이 아닌 곳이거나 길위에서 보내는데, 언제나 집에 돌아가는 꿈을 꾼다. 제주에서글로벌 문화신문 <씨위드>를 발행했고, <뉴욕지금미술>, <뉴욕생활예술기>라는 두 권의 책을 내기도 했다

 

 

 

 

 


까르르수다판 제주도 놀러오세요~! 2017/04/29 18:54 by 이나연


까르르수다판 강연도 하고 책도 팝니다. (하하) 2017/04/17 21:41 by 이나연


저어기 4월 22일날 4시부터 6시까지 "제주에서 글로벌 컨텐츠 만들기"라는 강연을 하게 됐거든요. 홍대앞에 책거리가 생겼고,, 22일 23일은 1시부터 6시까지 책도 팔고 앉아있어 보려구요. 용기가 없어 서점을 못 차리지만, 이틀정도 북페어에는 나가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서울에서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보면 좋겠고요. 시간나시면, 강연도 들으러 오시면,, 퀠파트랑 씨위드라는 정체모를 회사 두 개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드리려고 합니다.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우리 한 명의 고양이처럼 생을 살자_그림이 야옹야옹 고양이 미술사 2017/04/17 14:54 by 이나연

우리 한 명의 고양이처럼 생을 살자


 

16세기 말, 몽테뉴의 <에세>가 드높던 글의 권위를 무너뜨린 이래, 글쓰기의 종류는 다양해졌다. 에세이, 즉 수필의 조상인 몽테뉴는 자기탐구와 고백으로 점철된 진실만가득한 글을 후대에 남겼다. <에세>에서 몽테뉴가독자에게 하는 말, “그러므로 독자여, 나 자신이 이 책의내용이다. 이런 시시한 주제로 인해 소중한 시간을 허비함은 정말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럼 안녕.” 이라는 문장은 저자의 성격을 가장 잘 말해준다. 바보같은 짓으로 역사에 남는 것, 예술가의 사명과 비슷해 보이지않는가.

 

그런데, 이 글은<에세>의 서평이 아니다. 바로 <그림이 야옹야옹 고양이 미술사>를 위한 것이다. “고대 이집트 벽화부터 앤디 워홀까지, 명화 속 고양이를 따라 떠나는미술 여행을 담고 있는 책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지은이이동섭은 파리 유학 중 회색고양이 구름이를 만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을 바꾸게 된다. 딱딱한 미술사 책을읽는 와중에도 그림에 숨은 고양이에게 시선을 두게 되면서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경험을 한다. 똑같은 그림을보면서도 고양이의 존재를 찾아가며 봤더니 전혀 새로운 미술사를 쓸 수 있었다. 인류의 역사에서 고양이가가진 위상을 파악하면서 동시에 미술사도 함께 보는, 인류학, 미술사, 고양이를 동시에 잡는 일석삼조의 책 한 권이 탄생했다. 고양이에대한 애정고백들이 행간 곳곳에 드러나는 덕에 미술사와 도판을 읽는 재미는 배가 된다. 몽테뉴가 추구한에세이의 정수를 파고든다.    

 

세계관과 종교관, 혹은 사회적 필요에 따라 신이다가악마이기를 반복하는 질곡을 겪던 고양이는 르네상스에 이르러서야 그 자체로 온전히 인정받는다. 신 중심의사고에서 인간 중심의 사고로 넘어가는 대변혁의 시기에 고양이를 고양이 자체로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고양이 스케치가 여러 장 남았다. 이후로도 여전히 고양이는 악마로서, 아이들의 친구로서, 신으로서 다양하게 놓여지기를 반복하면서 줄기차게 인간 옆에, 그림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고양이는 인간과의 질긴 인연을 유지하면서 밀당의 긴장감은놓치지 않는다. 인간의 미래가 고양이를 닮아가길 원한다는 저자는 고양이가 현대인에게 주는 교훈을 다음과같이 말하고 있다.

 

고양이의 매력에 전염된 많은 현대인들은 반려동물에 마음을 의탁한다. 무엇보다 고양이는 일상에만족하는 해피라이프, 느린 삶을 즐기는 슬로라이프의 대명사다. 수천년 전부터 고양이는 자신이 집중해야 할 대상과 무관심한 상황에 대한 분리를 확실히 할 줄 알았다. 인간이고양이에게 배워야 할 중요한 덕목이다. 행복은 미래에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가 하지 않아도 될 일을 찾아서 줄이는 것에서 비롯된다. 쓸데없는일에 에너지를 소비하며 살지 말 것을 고양이는 인간에게 전하고 있다.”

 

사실, 소중한 시간을 자기고백같은 글을 쓰는데 소비하지말라던 몽테뉴의 말은 반어법이었다. 500여년 전의 몽테뉴가 말해주는 은근한 전언은 바보같은 짓이야말로유의미하고 집중해야 할 대상이라는 말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라고 계속 독려하는 존재는 고양이일까? 그림에서 야옹야옹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양이 미술사는 고양이처럼, 옆에두고 계속 들춰볼만하다.


-퍼블릭아트 4월호

 


까르르수다판 씨위드 with 스토리펀딩 2017/04/04 00:39 by 이나연

https://storyfunding.daum.net/project/14145

이런 걸 또 하게 됐습니다.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머스 커닝햄을 만나는 시간 2017/04/02 01:08 by 이나연

머스 커닝햄을 만나는 시간

 

다양한 원색의 스판덱스 전신타이즈를 입은 무용수들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음악과 움직임은 어울릴 듯 따로 논다. 따로 놀아 조화롭고, 조화로워 어색한 낯선 무대다.  2명에서 시작한 무용수들이 늘어나 어느덧 10명이 됐고, 제각각 다른 색을 입느라 무지개색이 된 그룹이 일렬로 모여 인사를 하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하다. 그렇다고 인간의 몸과 그 몸이 만들어내는 동작의 아름다움이 퇴색됐다는 뜻은 아니다. 못 믿겠다면 확인도 가능. 1970년작 <두번째 손(Second Hand)> 2011년에 재현한 BAM 공연 영상을 유투브에서도 볼 수 있다. 아무 생각없이 화면을 응시하다가 영상의 엔딩 크레딧에 다시 심장이 쿵,하고 떨어진다. 안무 바이 머스 커닝햄. 음악 바이 존 케이지. 의상 바이 제스퍼 존스. 각각 무용, 음악, 미술계의 대가로 예술사에 남은 이들이다. 각 분야에서 힘을 발휘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끌었다. 이 대가들이전설이 되기 전 무대가 2011년에 부활했고, 새 생명을 얻은 공연은 이제 유투브의 힘을 빌어 영생을 노리게 됐다. 그것마저 부족한 감이 있다면, 이제 전시장을 찾으면 된다. 미국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에 위치한 워커아트센터와 시카고 현대미술관(MCA)에서 각각 28일부터 528, 211일부터 430일까지 머스 커닝햄의 전시를 마련했다. 워커아트센터가 기획한 회고전 <공통의 시간(Common Time)>이 워커아트센터와 MCA에서 동시에 열리는 방식이다. 커닝햄이 말한 그대로, “음악과 춤과 예술은 서로 독립적이고 상호 의존적이며 공통의 시간을 나눌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실현한다. 무대배경, 공연자료 비디오, 비디오설치, 무대세트, 의상, 작품, 사진, 관객까지 커닝햄의 작품에 포함될 수 있는 예술적 요소들은 많았다. 본인의 힘으로 구현이 불가능한 부분을 도와주는 타장르 예술가들도 주변에 차고 넘쳤다. 그 엄청난 예술적 역동성을, 그 무수한 가능성의 실현을 두 곳의 전시장에서 만나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찾아왔다. 영화관, 공연장, 로비, 갤러리 등 미술관의 모든 시설들이 효과적으로 사용된다. 범주 밖으로 튀어 나가길, 엉뚱한 것과 뒤섞이길 좋아했던 커닝햄의 작업들은 현대미술관의 시설들과 자연스레 녹아든다. 커닝햄의 생각과 예술은 딱 지금의 미술기관이 원하는만큼 앞서 있던 건가.

 

제스퍼 존스(JasperJohns), 로버트 라우젠버그(Robert Rauschenberg), 꼼데가르송의 레이 가와쿠보(KawakuboRei), 프란츠 클라인(Franz Kline) 미술 거장들과 함께 했던 작업을 보는 건 서막에 불과하다. 커닝햄의 음악적 파트너인 케이지와의 협업은 그 수가 많아 헤아리지 못할 정도다.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과는 45 년간 쌓은 우정을 바탕으로 비디오작품과 TV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백남준은 1990년대에는 컴퓨터 기술을 표현 매체로 작품에 전면적으로 끌어들이며 커닝햄 무용의 전위적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데 일조했다. 커닝햄은 인체의 몸을 활용하는 아날로그 예술가였지만, 기술적 실험에 도전하는데도 거침이 없었다. 라이프폼즈(Life Forms)라는컴퓨터 안무법, 댄스 테크놀로지를 도입했을 정도다. 프랭크스텔라(FrankStella), 로버트 모리스(Robert Morris), 브루스 나우만(Bruce Nauman)도 커닝햄과 함께 하는 작가들이었다. 앤디 워홀(Andy Warhol)의 유명한 헬륨가스를 채운은색 풍선도 커닝햄의 공연에 등장한 소품이고, 당연히 이번 전시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무용의 탈극장화와 탈기교화를 추구했을 뿐 아니라, 탈장르를 시도했던 커닝햄의 작품들은 티노 세갈은 물론,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현대예술가 대부분에게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예술가의 예술가란 찬사가 부족하지 않다.

 

커닝햄은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무용단의 1무용수로 활동했다. 1953 본인의 이름을 단 무용단을 꾸린 뒤, 금세 이 무용단을 마사그레이엄 무용단, 앨빈에일리아메리칸댄스 시어터와 함께 미국의 3 무용단으로 성장시켰다. 1964년 머스 커닝햄 무용단은 6개월 동안 유럽과 아시아를 투어할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다. 이 역사적 투어에는 존 케이지와 로버트 라우센버그가 포함돼 있었다. 투어 이후엔 본격적으로 재단을 설립했고, 재단을 창립할 수 있도록 마르셀 뒤샹, 로이 릭텐슈테인라우센버그 등 많은 화가들이 작품을 기증했다. 그 작품을 팔아 재단의 기금을마련할 수 있었다. 휠체어에 앉아서도 후학양성과 안무개발에 열심이던 커닝햄은 2009년 세상을 떠난다. 현대무용계를 넘어, 예술 전반에 혁혁한 공을 세운 커닝햄은 본인 사후에 지속이 힘들어질 상황을 염려해, 본인 이름을 딴 조직이 사후 2년 후에 해체했으면 한다는 유지를 남긴다. 2012년을 맞아 머스 커닝햄 무용단은 그들의 최고의 명예를 누릴 때, 최상의 컨디션으로 준비한 마지막 공연을 끝으로 해체했다. 존스와 라우센버그의 무대의상과 무대장치를 워커아트센터가 구입하면서, 이 야심찬 이원회고전은 준비를 시작했다. 5년간의 준비를 마치고 대중과 만나게 된 회고전을 기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사람의 몸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하지만 그 한계 속에서 만들어내는 변화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며 예술을 위한 예술, 무용을 위한 무용을 추구했던 예술가. 예술가를 자유롭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주체성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관객도 해방시킨 운동가. 모든 장르의 예술가를 품은 예술가들의 친구. 충실한 업적을 남기고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이 아직도 커닝햄의 부재를 아쉬워한다. 그래서 오늘도 부재의 흔적들을 한계없이 좇는다.


-헤리티지 뮤인 3월호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책은 필수품, 서점은 유망사업 2017/04/02 01:06 by 이나연

책은 필수품, 서점은 유망사업

 

서점은 사양산업이 아니다. 해보니 가능성이 보인다.” 지어낸말이 아니다. 서귀포 중앙로터리에서 참고서 없는 서점, ‘북타임을 운영하는 책방 사장님에게 직접 들은 말이다. 녹음할 꺼라고, 사실만 말해주셔야 한다고 추궁했다. 정확히 두 번 말씀하셨고, 분명히 두 번 들은 말이다. “서점은 기획만 좋다면 가능성으로 충만하다.” 근래 내 뚫린 귀로 들은, 인간의 입에서 나온 말 중 가장 희망적이고,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지역의 가게를 리서치하는 잡지 브로드컬리’ 2호의 주제는 서울의 3년이하 서점들”, 부제는 책 팔아서 먹고 살 수 있느냐고묻는다면?”이었다. 새로 생긴 작은 서점들의 애환이 생생하게실려있는 잡지다. 인터뷰에 참여한 7곳의 서점 중 벌써 2곳이 2016년 말에 문을 닫았다.그나마 가장 자리를 잘 잡은 서점에 속하는 다시서점 김경현 책방지기의 인터뷰를 일부 옮겨 본다. “시집 한 권 정가가 8천 원 정도 되니까 80% 공급률을 기준으로한 권 팔 때 1,600원 남는다. 10%할인을 적용하면 800원이 남는다. 5% 적립까지 하고 나면 한 권에 400원 남는다. 카드 수수료는 별도다. 장사하면 안되는 구조다.” 그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 두 줄. “어느 날 서점이 문을 닫는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닐 것이다. 당신들이책을 사지 않은 탓이다(웃음).”  ‘괄호 열고 웃음 괄호 닫고를한참 들여다봤다

 

단군 이래 불황이 아닌 적이 없다는 출판시장을 생각하면, 왜 굳이 아까운 나무 베어가며 책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 들법도 하다. 자본주의 논리가 완전히 집어삼킨 지구별에서 여전히 그 논리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 출판계, 더 넓게는 문화예술계에 퍼져있는 것은 알겠다. 책을 만들거나 팔거나 유통하는 일련의 과정에 손 하나를 보태는 모든 이들은 자본주의 시장에서는 언제나 아웃사이더일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들 모두에게 끊임없이 지지말고 함께 가자고 독려하는 것도 결국 동변상련의 업계동료들인 모양이다. 서점에서 가능성을 찾아 희망을 전해주는 것도, 서점이문을 닫지 말라고 책 한 권이라도 사주는 이도 결국은 끝이 안 보이는 힘듦을 함께하는 친구들이다. 만약동료의 범주에 날 끼워준다면, 나 역시 지치지 말고 끝까지 희망을 말해야겠다.

 

다쿠치 미키토가 쓴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동네서점>이라는 책의 첫 문장은 이렇다. “책은 기호품이 아니라 필수품이었다.” 서점의 아들로 태어나 서점 직원으로 일하며 서점과 평생을 해온 저자는 책이 기호품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동일본 대지진을 겪으며 생각은 바뀐다.강도 9.0의 대지진이 덮친 도호쿠 지역의 서점을 재해 발생 일주일만에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와 책을 사갔다. “어떤 책이든 좋으니아무튼 책을 좀….”이라고 말하며 앞다퉈 책을 구해간 탓에 서가는 금세 텅 비었다. 집이 무너진 상황에서도 갈구하게 되던 어떤 것, 재난의 순간에도간절히 원하던 것. 티비도 전화도 인터넷도 먹통인 최악의 순간, 불현듯떠오른 오래된 장난감이자 되찾고 싶은 일상의 위안. 그랬다. 책은인류의 오래된 필수품이었다. 책과 동네서점이 없는 미래는 대지진보다 더 큰 재난상황일지도 모르겠다. 재난대비책을 강구해야 하지 않겠는가.


-한라일보 문화광장



리뷰, 작가/작품론, 기고. etc 한 세대가 사진을 경험하는 방식_더 스크랩 리뷰 2017/02/21 10:16 by 이나연

한 세대가 사진을 경험하는 방식_더 스크랩 리뷰

 

 

사진은 관찰하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과정이다. –존 버거 <사진의 이해>

 

미국의 텔레비젼 진행자인 잭 파(Jack Paar)가 한 청년에게 물었다. (hot)이 어울린만한 자리에 왜 쿨(cool)이라는 말을 쓰느냐고. 청년이 답한다. “앞세대가 이란 말을 다 써 버렸으니까요.” ‘인간의 확장이라는 부제가 붙은 마셜 맥클루언의 책 <미디어의 이해>에 나오는 일화다. 1964, 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에 지어진 책의 에피소드가 아직도 유효하다. 인간은 생각보다 변화가 빠른 동물은 아닌 거 같다.  어느 순간 이란 단어가 이라는 단어로 대체됐던가. 그랬더라도 여전히 신선하고 새로운 것의 등장에 젊은이들은 이라는 형용사를 내뱉길 즐긴다.

 

<더 스크랩>행사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쿨하다라는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PULSE> <UTITLED>같은 아트페어같기도 하면서, 그들을 따라한 느낌보다는 그들보다 훨씬 정리되고 안정적인 연출이었다. 별다른 디자인이 없는 것 같지만, 그래서 무심한듯 시크하게, 다시 말하자면 세련되고 젊은 감각으로 꾸린 디테일들을 찾아보는 것은 분명히 즐거운 경험이었다. 직접 제작한 박스테이프와 다시 박스테이프를 응용한 형식으로 전체 디자인을 잡았고, 주조색도 청량한 울트라마린과 화이트다.  박다함이 스크랩했다는 올해의 음악들이 백뮤직으로 깔린다. 일하는 스텝들이 모두 20대에서 30대 초중반이었다. 관객들도 다시 그 나이 또래와 다르지 않아서, 젊고 쿨한 공간에 와 있다는 인상을 주는데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개인적으로 이 요소가 <더 스크랩>이 멋져 보인 주요인이라고 생각한다. 입구에서부터 엄격히 수질관리를 하는 클럽처럼, 이 행사의 관객과 진행자들은 젊고 활기차서 쿨해보였다. 그에 더해 마치 마트에 디스플레이되는 상품처럼 이케아철제 선반에 랜덤으로 (jpg 파일 크기에 따라) 전시된 102명 사진작가들의 작품이 10점씩, 1020점의 사진을 a4 사이즈에 출력해 진열했다. 작품이 전시된 공간을 주최측은 쇼룸이라 불렀다. 여기에 더해 색다르게 사진을 구입하고 즐기는 방식이 제시됐다. 3,000원의 입장료를 내고,사진을 10장 살 것인지 5장 살 것인지를 정함에 따라 5만원 혹은 3만원을 내고 구입할 개수만큼 숫자와 빈선이있는 카드를 받는다. 주최측은 이를 체크리스트라 불렀다. 사진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획일하게 통제된 상태로 놓인 1020점의 사진과 흩어진 그들 사진을 한 장에 압축해 놓은 썸네일을 번갈아 확인하며, 10개로 추려 기입한 번호를 고치고 또 고치고 한다.

 

게임을 하는 건지, 마트에 온 건지, 작품을 사는 건지, 전시를 감상하는 중인지, 라운지 바에서 놀고 있는 것인지 정의를 내리기 어려운 상태에서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체크리스트가 완성됐다면 다시 입구에 위치한 스토리지룸(작품저장소)로 돌아가 예의 리스트를 스텝에게 제출한다. 스텝은 리스트의 숫자를 입력해 한 사진씩 차례로 모니터에 뜨도록 한 뒤에, 모니터에서 고른 사진이 맞는지 구매자에게 확인하는 과정을 거치게 해준다. 내 경우, 사진을 고르는 사이 솔드아웃된 이미지가 있었고, 그 이미지를 다른 사진으로 대체한 뒤에 잠시 대기를 했다. 곧 주최측이 스크랩팩이라 명명한 투명한 a4사이즈 봉투를 받아볼수 있었다.  봉투를 열어본 뒤에야 내가 고른 작가의 사진을 누가 찍었는지 정체를 파악할 수 있다. 사진과 같은 사이즈, a4에 출력된 작품정보와 작가정보가 그제서야 드러난다.

 

한정된 공간과 제한적인 예산 속에서 잘 편집된 기획으로 한정된 상품을 판다. 이 세대가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을 더 스크랩은 그렇게 구현해내고 있었다. 이를 두고 <한겨레> 에서는 이케아 세대적 특징이라말했다. 1978년 이후에 태어난 세대를 두고, 한 교수가 감각적이지만 실용적이고 값이 싼 이케아에 빗댔다. 그를 구현이라도 하듯, 전시장의 스탠드부터 철제선반까지 모두 친구의 자취집에서 보던 이케아의 대표상품들이었다. 이케아를 소비하는 세대가 사진을 소비하는 방법을 보여준다면 바로 더 스크랩일 것이라는 사실은 맞다.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블로그 등을 통해 자체적으로 컨텐츠를 편집하고 운용하는 능력을 가진 이케아 세대는, 가구 또한 편리하게 사서 본인이 조립해 사용한다. 이케아의 단순함은 다양한 편집이 가능한 바탕이 된다. 이케아 세대에게 휴대용 전화기의 디지털카메라 내장으로 인한 사진생산과 SNS를 통한 유통은 자연스럽다. 사진은 얼마든지 가지고 놀수 있는 매체가 됐다. 고등교육과 높은감각을 가진 젊은 세대가 무수히 탄생해 제 몸값을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사진이 그랬다. 일찍이 존 버거가 말했듯이, 무한대로 재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이 바로 사진이 가진 원리다. 그리하여 사진은 미술에서도 가장 가치를 갖기 어려웠다.

 

다시, 가치가 없다는 일에 굳이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바로 기획의 본질과 통한다. 자의식으로 똘똘 뭉친 사진을 사는 것도사진을 보러온 자의식 과잉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들의 시선에 자의식 강한 내가 포함되는것도 이 행사의 묘미였을 것이다. 우리는 같은 시대를 견뎌내고 있구나,라는 느슨하면서도 확실한 연대의식이 사진에 집중하는 듯한 그 개개의 존재들 사이에 흘렀다고 믿는다홍보비용이 많았을 리가 없는, 그리하여 기획자들의 자체 SNS와 웹사이트에 국한해 홍보한 행사에 1,600여명이 찾았다. 단 사흘간의 행사에서 5,300여 장이 사진이 팔렸다. 지루한 전시와 행사는 지난 세대가 다 써버렸으니, 이제 새로운 세대는 새로운 형식의 전시와 행사를 모색해야하는 건 당연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지만, 색다른 편집은 늘 탄생한다.  이 어려운걸 이케아 세대라 이름붙여진, 칭찬인지 욕인지 알 수 없는 표현을 선물받은 친구들이 자꾸 해낸다.


-퍼블릭아트 2017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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